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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밖' 말의 무게

입력
2023.02.01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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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우리나라 보자기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보자기가 존재감을 과시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법원이다. 법정에선 검사 등 소송관계자들이 황금색 보자기에서 서류 뭉치 꺼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보자기에 싸인 기록은 근대재판의 원칙인 증거재판주의를 상징한다. 권력, 감정, 추측이 아닌 증거에 의한 재판은 사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사실 기록을 열어보지 않고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신생아의 삶을 예측하는 것과 같다. 인생의 '태양(態樣, 모습이나 형태)'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태어났을 때 상황만으로 미래를 단정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의뢰인의 말만 들었을 때는 무죄를 다투려 했지만 수사 기록을 본 이후에는 '선처'를 호소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의뢰인을 설득할 때가 종종 있다. 반면 공소사실만 보면 흉악범이지만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필자를 비롯한 법조인들은 지인들이 언론에 난 사건 등을 물어보면 즉답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 기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 등에 인용되는 변호사들의 각종 코멘트를 보면 증거재판주의가 무색하다.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절차나 원칙 등 일반적 설명을 하는 것은 전문가의 역할이지만, 사실관계를 규정하고 법리를 예단하는 것은 여론재판으로 호도할 우려가 있다.

아직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수사 단계에서 전문가인 변호사들이 범죄를 기정사실화한다면 이는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만큼이나 대중에게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 심지어 '비공개'인 가사소송의 사실관계조차 일방 주장을 사실처럼 전제하고 비평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최태원 회장의 이혼사건 결과가 나오자 SNS와 언론에는 이른바 '이혼전문' 변호사들의 추측과 비평이 넘쳐났다. 재산분할은 재산형성 과정, 기여도 등 구체적 사실로부터 도출된다. 법정 밖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매우 파편적이거나 '카더라' 수준이다. 먼저 적정한 재산분할 규모를 일방의 주장을 기준 삼아 결론 내고 그에 맞춰 '카더라'를 기반으로 재산형성 과정을 추측하고, 아전인수식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방송심의규정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는 "방송은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당사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변호사 윤리규약 제10조는 "수임하지 않은 사건에 개입하지 아니하고 그에 대한 경솔한 비판을 삼간다"고 규정한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전문가 발언은 재판부에 국민정서법을 강요할 수 있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양태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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