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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선택, 일흔하나의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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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6세와 15세였던 어린 로미오와 줄리엣은 70대에 말을 바꿨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68)의 두 주연 배우, 레너드 위팅과 올리비아 핫세가 반세기 만에 외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두 배우는 영화에서 나체 촬영이 강요됐다며 이를 성추행과 아동착취로 고발하는 소송을 냈다. 세상은 그들의 용기를 높게 샀지만, 모두가 박수를 보낸 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배우들이 "말을 바꿨다"는 사실에 더 주목했다. 감독 프랑코 제피렐리의 아들은 고인이 된 아버지 대신 "촬영 55년이 지나 갑자기 깨어난 노년의 두 배우의 '수년간 학대로 고통받았다'는 선언을 들으니 당황스럽다"고 반박했다. 이들이 과거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영화가 얼마나 귀중한 경험이었는지를 말했고, 고인과 친분을 유지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줄리엣 역 핫세가 개봉 50주년이던 2018년 나체 촬영을 "영화에 필요했다"고 언급했던 사실도 재조명됐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또렷해진다. "많은 트라우마 피해자와 같이 나중에 돌아보고서야 '역겨운 일이 맞았다'고 깨달았다." 2010년대 영국 드라마 '스킨스'의 배우 에이프릴 피어슨이 10여 년이 지나 자신의 노출 장면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대다수가 10대였던 출연진이 성적인 장면을 촬영하기에 "충분히 자란 나이인가"라고 물으며 "당시엔 너무 어려 이게 옳은지 질문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10대였던 1970년대 영화에서 여러 번 전라 연기를 했던 나스타샤 킨스키도 30년이 지나 "촬영장에 나를 보호할 누군가가 있거나 안전하다고 느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성년자 시절 성인 잡지에 사진을 실었던 브룩 실즈는 성인이 되자 판매 금지 소송을 냈다. 실즈는 자신이 성매매 여성을 연기했던 영화에 대해서도 "만약 오늘날 그 영화를 만든다면 나이가 많은 배우가 미성년자 연기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들에게 "예전엔 이렇다더니 왜 말을 바꿨나"라고 손가락질하는 일은 얼마나 덧없나. 위력이나 협박은 반드시 물리적인 폭력이나 흉기가 있어야만 힘을 갖는 건 아니라는 점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미성년자 배우들이 놓였던 촬영 현장은 이들에게 결코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내 편이 아닌 어른들 사이에서 "이런 기회를 잡기 힘들 것"이란 은근한 강요에 내린 미성년자의 선택 역시 본인의 선택이니 감당하라는 질책은 가급하다.
더구나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오락가락하는 게 사람의 생각이다. 몸과 마음이 자라던 미성년자 시절엔 더욱 그렇다. 그땐 틀림없이 '맞다'고 여겼으나 세월이 흐르니 완전히 틀렸던 것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성추행과 아동착취라는 범죄보다 '표변'이 더욱 괘씸한 모양이다. 피해자에게 엄격한 이 잣대는 이상하게도 늘 이중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배우에게 전신 속옷을 입게 하겠다던 감독은 촬영 당일 "나체로 연기하지 않으면 영화가 망한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감독도 말을 바꿨지만, 이는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성범죄 피해자가 진술 과정에서 말을 바꿨다면 당장 '무고죄'에 처해야 하지만, 불과 9시간 만에 말을 뒤집은 '비동의 간음죄' 입법은 그럴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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