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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더 늙어도 일하라니!" 연금개혁 반대 시위 D-2, 파리는 분노로 끓었다

입력
2023.01.31 04:30
수정
2023.01.31 05: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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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2차 총파업 겸 시위... "극도의 흥분 상태"
'70% 반대 여론'에도 강행 마크롱... 긴장 고조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1차 총파업 겸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파리에서 한 참가자가 시위대를 향해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 파리=A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1차 총파업 겸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파리에서 한 참가자가 시위대를 향해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 파리=AP·연합뉴스

"많은 프랑스인의 흥분이 극에 달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29일(현지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만난 대학생 암브레 라필라이(19)씨에게 31일 열리는 2차 총파업 및 시위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게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시위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계획됐다. 라필라이씨는 "분노한 민심이 어떤 방식으로 폭발할지 모른다.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서면 그야말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피카소 미술관 인근 '챔팝 갤러리'에서 일하는 작가 A씨도 "시위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살아 있다'는 게 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장이 거칠고 격렬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연금개혁에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정부와 정부의 '횡포'를 막아내기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겠다는 시민들. 31일 거대한 전쟁을 앞둔 프랑스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1차 총파업 겸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파리에서 진행된 시위 전경. 파리=A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1차 총파업 겸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파리에서 진행된 시위 전경. 파리=AP·연합뉴스


분노로 끓는… 시민들 "마크롱, '월권' 말라"

시위까지 이틀이나 남았지만 29일 파리엔 전운이 흘렀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마크롱 정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 10일 올해 9월 시행을 목표로 잡은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시민들을 분노하게 한 건 이 대목이다. "연금 수령 시점인 은퇴연령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단계적으로 늘린다. 연금 전액을 받기 위한 근속 기간은 현행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린다."

42개 직군별 연금 제도를 통합해 유연성을 높이고, 최소 연금 상한을 최저임금 75%에서 85%로 올리겠다는 등의 내용도 개혁안에 담겼지만, 시민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마크롱 안'은 "더 오래 일해야 연금을 주겠다"는 메시지였다. 업무 시간 외 연락하는 것을 법으로 막을 정도로 '개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은 '노년의 행복을 빼앗는 것'으로 여겨졌다.

라필라이씨는 "연금개혁을 한다 해도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뒤에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반면 '일을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을 언급하며 '두통'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사용했다.

프랑스인들은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연금개혁을 국민의 요구가 없는데도 정치권이 추진하는 건 '월권'이자 '폭정'에 가깝다고 보는 듯했다. 여론조사 기관 엘라베는 "프랑스 국민 72%가 연금개혁에 반대한다"고 25일 발표했다. 반대 여론은 1월에만 59%(10일) → 66%(18일) → 72%로 가파르게 올랐다. '연금개혁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도 54%에 달했다.

유튜버 에르브씨는 "프랑스의 연금 제도는 '노년층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사회적 연대에 기반해 만든 소중한 자산"이라며 "마크롱 정부의 일방적 개혁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일반노동총연맹(CGT) 홈페이지에는 31일(현지시간) 진행되는 총파업이 어디에서 열리는지에 대한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프랑스 전역이 시위로 물들 예정임을 알 수 있다. CGT 홈페이지 캡처

일반노동총연맹(CGT) 홈페이지에는 31일(현지시간) 진행되는 총파업이 어디에서 열리는지에 대한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프랑스 전역이 시위로 물들 예정임을 알 수 있다. CGT 홈페이지 캡처


1차 때 몸 푼 시위대… "어떻게든 막겠다" 결의

이미 프랑스는 한 차례 달궈졌다. 19일 프랑스 주요 노동조합이 주도한 1차 총파업 겸 시위엔 내무부 추산 112만 명이 모였다. 노조는 200만 명이 결집했다고 한다. 1차 때처럼 2차 시위 때도 파리 전역 200여 곳에서 시위가 열릴 것이다. 12년 만에 연합 전선을 구축한 프랑스 8대 노동조합은 "2차 파업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거리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대학생 안토니(23)씨는 "1차 시위 땐 안 갔는데 2차 시위엔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위를 통해 반대 여론이 많다는 것이 확실해졌지만 마크롱 정부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아 분노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안토니씨가 시위에 나가기로 마음먹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것은 자명하다. 클레망 본 프랑스 교통 담당 장관은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대중교통 이용 등에 매우 큰 차질이 예상된다"고 했다. 학교·병원 등 공적 기관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것이다. 파리 시청은 시위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하루 동안 문을 닫기로 했다.

그럼에도 시위는 거침없을 것이다. 국민 다수가 시위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라베 여론조사에서 64%는 시위를 지지한다. '시위에 우호적이지 않다'(22%)는 여론을 압도했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의 20일 발표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75%가 "1월 이후에도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59%는 "시위가 정부의 계획 철회 및 수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음력 설을 축하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음력 설을 축하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정부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년 연장과 관련한 협상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강 대 강' 대치 국면이라 물러서기도 쉽지 않다. 연금개혁은 지난해 대통령 재선에 도전할 때 마크롱 대통령이 내건 핵심 공약인 데다, 연초부터 "올해는 연금개혁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 까닭에 물러서면 체면을 구기게 된다.


파리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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