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국제선 30번 타는 짝퉁사냥꾼

명품기업에 가품 솔루션 영업... 1년에 국제선 30번 타는 짝퉁사냥꾼

입력
2023.02.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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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스타트업엔 유난히 다양한 C레벨(분야별 최고 책임자)이 있습니다. 강점을 가지려는 분야에 최고 책임자를 두기 때문입니다. C레벨을 보면 스타트업의 지향점도 한 눈에 알 수 있죠. 스타트업을 취재하는 이현주 기자가 한 달에 두 번, 개성 넘치는 C레벨들을 만나 그들의 비전과 고민을 듣고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우리는 창업자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그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등을 알아보는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벤처투자 업계의 전설 돈 발렌타인)


④이도경 마크비전 CBO

애플, 구글, 유튜브 등 미국 굴지의 빅테크에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 세콰이어 캐피탈(Sequoia Capital). 이 곳의 창업자 돈 발렌타인은 "사람(people)이 아닌 시장(market)을 본다"는 말로 유명하다.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을 보고 투자한 것이 아니라, 이 회사들이 창출할 '시장'을 먼저 보았기에 해당 기업을 주목했다는 얘기다.

발렌타인은 2010년 스탠포드대 강의에서 "우리는 언제나 시장에 집중하고 시장의 크기, 시장의 역학, 경쟁의 본질에 초점을 맞춘다"면서 "그래야 큰 회사를 세울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잡스가 1976년 애플을 세우면서 모두가 대형 컴퓨터가 아닌 개인용 컴퓨터(PC)를 갖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한 것 역시 '시장'에 집중한 결과라고 봤다.

그러나 미리 시장을 내다본다는 건 말이야 쉽지, 일반적인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다. 특히나 그 시장에 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없고, 시장 참가자들이 제도 밖에서 숨어서 일하는 '지하경제'라면, 예측의 난이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이른바 '짝퉁'이라 불리는 위조상품 시장처럼 말이다.

그런데 오로지 이 짝퉁시장의 규모와 가능성만 보고 출발한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 2020년 설립된 인공지능(AI) 기반 위조상품 모니터링 서비스 마크비전(Marqvision)이다. 마크비전은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에서 위조상품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 간 거래(B2B) 스타트업. AI를 이용해 온라인 상품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분석해 위조상품을 자동으로 탐지, 제거하는 게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이다.

기술을 가졌다고 해서 손님이 저절로 모이지는 않을 터. 다른 초기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마크비전의 가장 큰 숙제 역시 자사 기술에 관심을 가질 만한 고객을 모으는 일이다. 이 일을 맡은 이가 바로 이도경(32)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Chief Business Officer)다. 전세계 명품 기업을 상대로 '짝퉁 대처법'을 팔고 있는 그에게 '위조상품 모니터링 솔루션'이라는 생소한 시장 얘기를 들어 봤다.

이도균 마크비전 최고비즈니스책임자가 지난달 5일 서울 강남구 마크비전 한국 사무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이도균 마크비전 최고비즈니스책임자가 지난달 5일 서울 강남구 마크비전 한국 사무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마크비전의 공동 창업자, CBO, 한국 법인 대표 세 가지 역할을 맡고 계십니다. CBO로서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CBO 역할은 회사마다 꽤 다를 것입니다. 기업의 성격, 목표로 하는 시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죠. 제 역할은 한 마디로 고객과 관련된 모든 상호작용을 총괄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첫째는 신규 고객 발굴, 둘째는 기존 고객 유지입니다."

-첫 고객은 어떻게 확보하셨나요?

"제가 공동창업자이자 CBO인 만큼, 마크비전의 첫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창업 이전에 영업이란 걸 해본 적이 전혀 없었어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실험적으로 '지인 영업'을 시작했어요. 제 휴대폰에 있는 모든 사람들, 유치원 친구부터 사돈 팔촌까지 연락을 돌리면서 하루 최소 5~10명에게 20, 30분씩 마크비전 아이디어를 피칭(투자 유치 활동)해 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운 좋게 지인 소개를 통해 이봉진 전 자라 코리아 대표와 연결됐습니다. 이 전 대표를 어렵게 만나서 2시간 정도 피칭을 했고, 그 자리에서 40여명의 패션업계 관계자에게 참조 메일을 보내주셨어요."

-회사가 성장한 뒤로는 고객을 어떻게 유치하고 있나요?

"현재 마크비전 CBO실 아래 세일즈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30여 명의 직원들이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고객인지, 고객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는 팀이죠. 저희는 고객이 저희를 찾아오게 하는 것보다, 저희가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능력이 훨씬 강하다고 자부하는데요. 비즈니스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링크드인, 이메일, 콜드 콜링(전화 영업)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고객에게 마크비전을 알리고, 실제 고객으로 전환되는 성공률도 꽤 높습니다. 예를 들어 잠재 고객이 패션 회사라면 해당 브랜드의 위조상품 거래 현황을 보여주고, 저희 솔루션을 쓰면 얼마나 효율을 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식이죠."

-떠나는 고객을 붙잡는 일도 중요할 것 같아요.

"100여 개 정도 되는 국내외 패션, 콘텐츠, 게임 회사 등이 저희 고객사로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분기에 한번 고객사를 만나 저희가 갖고 있는 장기적 방향 등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홍콩, 싱가포르,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해외 고객사가 늘다 보니 직접 비행기를 타고 가서 고객을 만나는 일도 잦아지고 있어요. 지난해에만 비행기를 30번을 탔습니다."

-조직 내에 CBO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대기업을 상대로 솔루션을 판매하는 B2B 스타트업이라면 직책 이름이 무엇이든 CBO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최고책임자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사의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고객사의 취약점을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죠."

-마크비전 창업 이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2012년 군복무 시절부터 창업을 꿈 꿨습니다. 기술 기반의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휴학한 뒤 미국에서 이러저러한 창업을 시도해봤지만, 의지와 실력이 부족해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사회생활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들어와 EY한영회계법인에 컨설턴트로 취업했습니다. 당시 디지털전략팀이라는 신규팀에서 삼성, CJ, 신세계 등 대기업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AI, 빅데이터, 가상화폐와 관련된 경험을 쌓아나갔습니다. 이때 비로소 B2B 시장에 눈을 많이 떴던 것 같습니다. 기사로만 접하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기업 내부에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또 여느 컨설턴트들이 그렇듯이 1년 3개월간 밤을 새면서 일하는 경험을 하게 됐죠. 그런데도 창업할 용기가 충분히 나지 않았습니다."

이도경 마크비전 CBO 주요 이력

2016~2018년 EY한영회계법인 컨설턴트
2018~2019년 데일리호텔 투자 총괄
2020년~ 마크비전 공동창업 및 CBO

-창업 전 스타트업 첫 경력으로 선택한 곳이 데일리호텔이었네요.

"대학 때 호텔경영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여행테크 분야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또 미국 벤처캐피탈인 세콰이어 캐피탈이 쿠팡 다음으로 투자한 국내 스타트업이 데일리호텔이죠. 데일리호텔 공동 창업자인 신인식·신재식 대표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는게 참 많았습니다. 경영자가 고독하다는 얘기를 책에서는 많이 읽었는데, 옆에서 직접 보니 잘 알겠더군요. 당시 경험을 통해 내가 실제 창업을 하게 되면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많이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 당시 20대였던 쌍둥이 형제가 의기투합해 회사를 설립하고, 6년 만에 야놀자에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제게 무척 좋은 자극제가 되었죠."

-마크비전 공동창업자인 이인섭 대표와는 어떻게 의기투합 하셨나요?

"2019년 데일리호텔에서 퇴사한 뒤 창업 아이템과 공동 창업자를 찾기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뉴욕, 보스턴,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내에서 스타트업이 가장 활성화돼 있는 도시를 찾았어요. 두 번째로 찾은 도시가 제 친동생이 머물던 보스턴이었습니다. 보스턴에서 동생과 함께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이인섭 공동대표를 만나게 됐죠."

-'이 사업 성공하겠다'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이인섭 대표는 로스쿨에서 지식재산권 분쟁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짝퉁'이라는 범죄산업이 계속 커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 시장에는 무조건 기회가 있겠다 생각했죠. 아니나 다를까 많은 기업들이 일정한 예산을 할당해 놓고, 지식재산(IP) 보호와 관련한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음알음 확인하게 됐습니다. 이 예산만 마크비전으로 가져와도 비즈니스 모델이 확실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비즈니스 모델이 불분명한 사업들이 많았어요. SNS처럼 사용자를 모으고, 사용자가 늘어나면 광고를 붙이는 식이었죠. 저희는 처음부터 고객사의 비용을 절감해주고, 남는 돈을 우리에게 투자하게 하자라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위조상품 모니터링 솔루션 시장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나요?

"마크비전은 현재 루이뷔통이 속해 있는 다국적 브랜드 기업 LVMH 산하 4개 브랜드 등 명품 패션기업과 네이버웹툰, 레진코믹스 등 콘텐츠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기업 두 곳도 저희의 고객이구요. 국내 수많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위조상품도 관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조상품 증가는 한류의 영향과도 정비례합니다. K팝 등 한국 문화 위상이 올라가면서, 국내 아이돌을 모델로 쓰는 브랜드들도 위조상품의 제품의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위조상품 모니터링 솔루션에만 머물러 있을 건 아니겠죠?

"마크비전은 앞으로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총체적 인프라를 만드는 기업으로 성장할 예정입니다. 지식재산권의 생애주기는 생성, 관리, 보호, 수익화 단계로 전개가 됩니다. 현재 위조상품 모니터링 솔루션은 이 단계 중 보호에 해당되는 것이죠. 마크비전은 앞으로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하나의 솔루션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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