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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부양 시대라는 말의 겉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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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부양 시대의 마처세대'라는 말이 유행이다. 마처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동시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로 요즘 중장년층을 가리킨다. 이들은 현재 부모나 자녀 중 한쪽을 부양하거나 양쪽을 모두 부양 중이다. 그러느라 정작 자신의 노년기 준비는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중장년층에서 자격증 취득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다.
셀프부양. 얼핏 들으면 타당하고 또 '셀프'라는 말이 붙으니 의당 그래야 하는 일이라는 느낌도 얹힌다. '자녀 의존 아닌 셀프부양의 시대'라는 언론 기사 제목도 이런 느낌을 부추긴다. 의존은 꿈도 꾸지 말고, 알아서 자립하라는 정언 명령이라도 울리는 것 같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는 "한국이 초저출산·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며 노인 부양비가 급등해 국가도 자녀도 노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니, "스스로 노년에 대비하려는 현상 자체는 한국의 기형적인 인구 구조상 바람직한 일"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정말 그런가? 국가도 책임질 수 없으니 각자도생하는 게 바람직한가? 사회학적 분석 맞나? 셀프부양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2016년의 '명견만리' 프로그램에서도, 현재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에서도 오히려 우리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항목은 노후 부양의 주체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이다. 이제는 어떤 조사에서건 응답자의 50% 정도가, 안전한 노후를 책임질 주체는 '사회'라고 말한다. 사회 시스템이라고 말하든, 복지 시스템이라고 말하든 국가가 빠질 수는 없는 문제라는 게 명백하다.
셀프부양이 가능한 나라로 언급되곤 하는 노르딕 모델에서나 독일에서나, 그 가능성은 국가가 복지정책으로 고안하고 지켜온 연금 덕분이다. 그런데 이 북유럽 나라들에서도 셀프부양은 온전히 낭만화될 수만은 없는 사안이다. 이들의 보편주의 복지정책은 완전고용이 가능했던 시기의 산물이고, 무엇보다도 생계부양자인 남편과 재생산 돌봄자인 아내를 축으로 하는 가족을 기본단위로 삼았다. 여성이 가정에서 행하는 무임금의 돌봄노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여성이 '집 밖에서' 하는 임금노동에도 젠더 불평등에 따른 임금차별은 기본이었다. 임금과 연동된 연금에서도 여성은 불평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 더군다나 지금처럼 일자리가 줄어들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속화되는 환경에서 소득에 비례하는 연금 수급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인구학적, 삶의 기술적 환경의 급변 속에서 요청되는 것은, 누구든 돌봄 역량을 갖추고 실천하는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과 기본소득의 연동을 통한 사회적 안전망 확보다. 단위 또한 가족이 아닌 개인이어야 한다. 이것이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키워드의 구체적 내용이다. 이 돌봄 사회에서는 경제를 돌봄이라는 본래의 의미로 되돌리는 게 가능하다.
이쯤에서 확인해 보자. 셀프부양 시대의 마처세대라는 유행어에서 빠진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가 무엇인지. 몸을 중심에 둔 돌봄과 상호의존이 그 하나이고, 서로 잘 돌보며 의미 있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또 생성하게 돕는 사회복지체계가 다른 하나다. 이 두 개의 축이 빠진 상태에서 도대체 누가 무슨 재주로 스스로 부양한다는 말인가. '노년기 부양의 주체는 사회이다'라고 응답한 시민들은 돌봄을 근간으로 하는 복지체계를 향해 확실히 몸을 돌리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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