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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좋다"라는 동의...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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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봅니다.
'좋은 섹스'의 기준은 무얼까.
지난달 26일 여성가족부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는 비동의간음죄 신설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담았다가, 법무부가 선을 긋자 발표 8시간 만에 "계획 없다"는 입장으로 번복했다. 하루 사이 벌어진 촌극은 비동의간음죄와 섹슈얼리티(성역할, 성 담론, 성적 욕망 등 성에 대한 총괄적인 주제)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비동의간음죄를 둘러싼 쟁점과 '동의'에 관한 논의를 최근 국내 출간된 섹슈얼리티 책을 통해 살펴봤다.
영국 옥스퍼드대 최연소·최초 여성·유색인 석좌교수로 임명된 젊은 철학자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저서 '섹스할 권리(창비)'에서 어떤 남성이 자신에게 '섹스할 권리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의 신체에 대한 '권리의식'의 발로라고 본다.
저자는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여성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출하며 총기를 난사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엘리엇 로저 사건으로 논의를 연다. 그는 엘리엇 로저와 같은 남성을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이라 명명하며 "자신에게 '섹스를 할 권리'가 있고, 여성들이 이를 박탈했다고 생각하며 격분하는 종류의 숫총각"이라 정의했다.
스리니바산은 섹스와 성적 욕망이 '지배적인 문화 규범에 따라 구성된 정치적 산물'임을 논증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충동'으로 취급되어 온 섹스와 성적 욕망 역시 정치적 검토나 재교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개인적인 성적 취향'이, 오늘날 공공의 안건으로 취급되고 있다.
"섹스는 샌드위치가 아니다." 스리니바산은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을 인용하며 이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주고 싶어하지 않는 한 당신은 누군가와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당신과 섹스하고 싶어하지 않는 한 당신은 누군가와 섹스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의사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절차는 바로 '동의'다.
"나쁜 섹스는 정치적 문제로, 쾌락과 자기결정권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중 하나다."
일찌감치 성적 결합에 있어 '자유로운 동의'를 제도 안에서 취급해온 서구에서는, 이제 '동의 그 이후'를 논의한다.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데 있어 '동의'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거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신의학 및 섹슈얼리티 박사 학위를 받은 작가 캐서린 앤젤의 책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가 대표적 예. 지난해 중앙북스가 번역본을 출간했다.
'동의'라는 여성의 주체적 판단만을 '좋은 섹스'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을 때, 한계는 명확하다. 누구도 매 순간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동의' 그 자체에만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취약하게 만든다.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을 때 문제 제기를 할 책임 등 안전한 섹스를 만드는 부담을 여성에게 전적으로 지운다. 사전에 철저한 규칙을 세워둔다고 한들, 가장 내밀한 사생활에서 벌어지는 권력 불평등을 모두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약간의 불통과 실수도 가해와 피해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앤젤은 오히려 "동의, 즉 '좋다'고 말한 것과 욕망을 표현한 것이 쾌락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동의'를 구하는 절차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섹스가 내포하는 근본적인 권력 불균형과 개인의 취약성을 인정하며, 자신의 욕망과 상대의 욕망을 가늠하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데에서부터 '좋은 섹스'의 가능성이 열린다. "여성의 욕망에는 '동의'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부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비동의간음죄는 '성범죄 무고'를 양산할 악법으로 오독되고 있다. 성관계의 명시적 동의를 증거로 남겨 놓지 않으면, 훗날 성관계 파트너의 심경 변화로 언제든 처벌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의'와 '비동의'는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 부분으로, 단순히 피해자의 내심만으로 범죄가 성립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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