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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호흡에 자해까지... 증언대 선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들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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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A양은 지난해 말 법정 증인석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3년 전 입은 피해를 고스란히 기억해 내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기억을 못 하면 못 한다고, 잘하면 왜 그것만 기억하냐며 말꼬리를 잡는 피고인 측 질책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정 가장 높은 곳에 앉아 1시간 30분 넘게 A양 진술을 듣고만 있었다. 피고인 측의 2차 가해성 질문에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방청석의 가족들도 발만 동동 구를 뿐, 증언에 개입한다는 의심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A양을 지켜만 봐야 했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의 수사기관 영상진술을 진술조력인 등의 진정 성립만 있다면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는 성폭력처벌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영상을 통한 피해자 측의 일방 진술에 피고인 측 반대신문권과 방어권이 침해된다는 게 헌법재판관 다수(6명)의 판단이었다. 헌재 결정으로 미성년 피해자들도 법정에 나와 증언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당시 이선애 등 3명의 재판관은 반대했다. 이들은 "반대신문으로 미성년 피해자에게 수치심, 곤혹, 공포 등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고통 등 2차 피해만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회유와 압박 등으로 법정에서 진술하는 미성년 피해자가 추가 피해를 입을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도 헌재 결정으로 인해 미성년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겪어야 할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법원은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했다. 법정 증인석이 아니라 영상으로 피해 증언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피고인과 분리된 법원 내 화상증언실 또는 여성가족부 산하 해바라기센터에서 증인신문을 하는 방안이었다. 법정은 미성년 피해자들에게 낯선 공간인 데다, 피고인과 한 공간에 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아보자는 취지였다.
성과는 있었다. 영상 증인신문의 만족도가 높았고, 재판부 역시 2차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다수 대리한 신진희 변호사는 "미성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원격 수업을 한 덕분에 영상 신문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실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증인으로 나선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는 679명에 달했다. 영상 증인신문이 전국에 확대 실시된 지난해 7~12월 증인으로 나선 350명 중 145명(약 41%)이 영상을 통해 피해를 증언했고, 올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럼에도 증언에 나선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피해는 증인신문 전부터 감지된다. 위헌 결정 이후 증인출석 통보를 받은 미성년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을 돌이켜 봐야 한다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흐릿해진 기억이 무죄와 무고죄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아동 전문가인 신수경 변호사는 "아이들은 조금만 틀렸다고 얘기해도 바로 위축이 되는데, 최소 6개월에서 최대 3년 전 사건을 기억하라고 하니 심리적 부담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언 과정에선 과도한 긴장감 탓에 몸을 떨고, 오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손등을 뜯어 피가 나는 바람에 피딱지까지 생긴 피해자들도 있다. 한 미성년자는 지난해 해바라기센터에서 영상 증인신문 도중 과호흡 증상을 겪었다. 센터 직원들이 응급조치를 하고, 휴게 시설에서 심리적·물리적 안정을 시켜준 뒤에야 증언을 마무리하고 귀가할 수 있었다.
응급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해 수도권의 한 법원에선 증인신문을 끝낸 미성년 피해자가 법원 청사 화장실에서 흉기로 자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간호사의 응급 처치를 받고 나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김지은 대구 해바라기센터(아동) 부소장은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에서 법정 증언 전후 심리적 고통이 더해지면서, 피해자들의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피고인 측의 공격적인 질문은 이들의 고통을 더욱 키운다. 일부 변호사는 증언의 신빙성을 흔들기 위해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을 하고, 전략이 먹히지 않으면 날카롭고 고압적인 말투로 윽박지르기도 한다. 성범죄 피해자 법률대리 경력이 많은 한 변호사는 "피고인 측이 재판부의 신문사항 제한을 무시하거나, 답변이 어눌한 미성년 장애인을 다그친 사례도 있다"며 "일부 판사들은 반대신문권 보장이라는 이유로 변호사들의 무리한 질문을 제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조인들은 '법관의 증인신문'을 대안으로 제안한다. 재판부가 피고인 측의 신문사항을 사전에 받아 감수를 거쳐 증인을 신문하는 걸 기본값으로 하자는 얘기다. 재판장이 소송지휘권을 행사하면 가능해 법 개정도 필요없다. 성범죄 전담 재판부에 있었던 한 부장판사는 "법관들이 중립적 입장에서 신문하면 변호사들처럼 공격적이지 않아 피해자 보호 효과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증인신문 전후로 미성년자들을 관리할 체계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언 전에 담당판사 등을 소개받고 시각 매체를 통해 증언 시설 등을 숙지하는 준비절차를 마련하고, 신문이 끝난 뒤에는 미성년자 상태를 추적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피해자 국선전문인 조현주 변호사는 "증인이 거짓말할 것 같다는 전제를 깔고 사건과 무관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변호사들이 적지 않다"며 "변호사들도 증인신문 기법을 연구해야 하고, 재판부도 신문에 관여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유관기관이 촘촘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미성년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판사가 검사 등의 청구에 따라 공판 전에 증인신문을 하는 증거보전절차와 아동전문조사관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증거보전절차를 도입해도 피고인이 요청하면 공판에서 증인신문을 추가로 할 수도 있어 한계가 있고, 아동전문조사관 제도는 인력 부족 문제 때문에 법안 손질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많다.
김지은 부소장은 "피해를 속으로 삼키고 있는 미성년자와 그 가족들이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며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국회·정부·법원이 응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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