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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족’ 구제,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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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종종 지각을 했다.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라 차가 막혔다는 변명은 통할 리 없었다. 다그치는 담임에게 한마디도 못 했다. 맞기도, 욕먹기도 했다. 다 엄마 때문인데.
"준비물(또는 참고서) 살 돈 줘요." 어머니는 또 "애고, 그걸 이제 말하니" 하곤 아침 댓바람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갔다. 등교 시간은 다가오는데 어머니는 함흥차사. 옆집은 얼마 전 손을 벌렸으니 다른 집에 돈 꾸러 간 모양이다.
당신의 창피함을 감추려는 웃음이 늘 짜증을 불렀다. "또 학교 늦었잖아." 어머니 손에 들린 꼬깃꼬깃한 지폐를 낚아채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미안해."(어머니) "됐어!" 어머니가 늦게 와서 화가 난 건지, 돈 없는 집구석이 마땅치 않았는지 가물가물하다. 그까짓 준비물쯤 대수냐고 할걸,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찢어진 분홍 내복을 태연스레 입고 "나중에 너 취직하면 좋은 걸로 하나 사 줘" 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취업하기 전 세상을 떠났다.
빚은 부끄럽고 무서운 존재였다. 부의 지렛대(레버리지)가 아니라 빈곤의 늪이라 여겼다. 능당할 수 없는 돈은 빌리지 않았다. 알뜰한 아내 덕에 가급적 안 쓰고 악착같이 모았다. 요즘 입고 다니는 옷도 1997년 어머니가 생전에 사 준 것들이다. 아직 멀쩡하다.
주식에 투자한 수천만 원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날렸지만 세상 탓, 정부 탓하지 않았다. 마흔이 넘어서야 온전히 내 것이 된 집을 아내에게 선물했다. 강남 3구도, '마용성'도 아닌 우리 형편에 맞는 작은 아파트다. 레버리지를 최대한 당겨 요지에 투자한 지인들의 집값이 몇 배 올랐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럴 때면 어머니의 낡아 찢어진 내의를 떠올린다.
금리가 뛰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정부 관료와 정치인의 이런저런 '빚 탕감' 구호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 '영끌족'만 구제하면 혼인, 출생은 늘고 미래 비용은 줄일 수 있다고 호언한다. 당신들 돈으로 대신 갚아 줄 요량이 아니라면 부디 자중하기 바란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건 공동체 책무지만 어디까지나 생계형 빈곤에 한정했으면 한다.
영끌족은 사회적 가난에 가깝다. 영혼까지 끌어올 정도로 빚을 내려면 이미 수중에 수억 원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당장 못 살아서가 아니라 남보다 더 잘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린 승자독식, 부익부빈익빈 사회 분위기에 휩쓸린 결과다. 그게 또 집값 거품을 부풀렸다. 결국 금리는 안정될 것이고 버티면 집은 남는다. 생계형 빈곤과 구별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소득으로 감당하지 못할 돈을 빌린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 그게 상식이다.
개개인의 사정은 다를 수 있다. 건강한 주거 사다리를 놓지 못하고 영끌을 부추긴 정책의 실패도 따져 봐야 한다. 다만 땀 흘려 번 만큼 차근차근 미래를 설계한 이들, 빚의 무게를 절감하고 무리하지 않은 이들, 영끌을 하고 싶어도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이 심리적 박탈감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게 공정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지난해 발언을 곱씹는다. "20·30대 분들은 3% 이자로 돈을 빌렸다면 평생 그 수준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금리가 장기적으로 그 자리에 머물 것 같다는 가정보다는 위험이 있다는 걸 보고 의사 결정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어떤 조언보다 밋밋하지만 묵직하다. 이게 사회지도층이 해야 할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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