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보다 빠른 국산 전투기... KF-21 '초음속' 비행 성공 의미는[문지방]

첫 비행 이후 6개월 만에 초음속 성공
세계 8대 항공 선진국 클럽 진입 쾌거
국산 1호 항공기 부활호 이후 70년 만
DJ "전투기 개발" 선언 20년 만의 성과

방위사업청은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 1호기가 17일 첫 초음속 비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KF-21 시제 1호기의 비행 모습. 방위사업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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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지난 17일 오후 3시 15분쯤 경남 사천시 인근 남해상 4만 피트(약 12.2㎞) 상공. 우리 기술로 만든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가 푸른 하늘을 갈랐습니다. 지상에 있는 임무통제실에서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하(음속ㆍM) 0.98, 0.99…. M 1.00을 뛰어넘는 순간 통제실에서는 소리 없는 함성이 터졌습니다. KF-21이 음속을 사상 처음으로 돌파하면서 ‘우리 기술로 만든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호칭을 공식적으로 쓸 수 있게 됐으니까요. 대한민국이 세계 8번째로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 성공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초음속 전투기 KF-21이 17일 초음속 비행에 최초 성공했다. 사진은 조종사 HUD(헤드업 디스플레이)에서 포착된 마하 1.05 돌파 순간(노란 상자 안). 방위사업청 제공

대한민국 최고·최대 프로젝트… ‘보라매’ 날개를 펴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8월 “2015년까지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우리 기술로, 우리 손으로 만든 KF-21 사업이 사실상 시작된 시점입니다. 군은 2002년 11월 장기 신규 소요를 결정했고 2010년 4월 사업추진 기본전략 심의 및 의결에서 국내 연구개발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2015년 12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본계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1월 체계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지난해 4월 말 처음으로 엔진 시동을 걸었습니다. 7월 6일에는 경남 사천시 KAI 공장에서 지상활주(램프 택싱)하는 모습을 기자단에 공개했습니다. 이후 7월 19일에는 시제 1호기가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첫 비행에 성공했죠. 방사청은 “이번 최초 비행을 통해 한국형 전투기 개발은 비행시험 단계에 돌입하게 되었고, 2,000여 회에 달하는 비행시험을 통해 비행영역을 확장하고, 각종 성능 확인 및 공대공 무장 적합성 등을 확인하면 2026년 체계개발이 종료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첫 비행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 초음속 비행까지 성공한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경남 사천시 사천 비행장에서 열린 '2022 사천 에어쇼' 개막식에서 관람객이 KF-21 전투기를 둘러보고 있다. 사천=연합뉴스

초음속은 항공 선진국 대열 ‘입장권’… KF-21이 앞장

방사청은 KF-21이 초음속 비행에 성공하자 “음속 돌파 비행을 통해 KF-21이 음속영역에서 기체의 구조적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항공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에는 공기저항으로 인해 날개 등 기체에 충격파가 발생되고, 주변 공기흐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항공기의 구조 건전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KF-21이 음속 돌파 시 충격파 등을 극복한 정상비행을 수행했다는 점은 초음속에서 기체의 구조적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이야기죠.

이번 초음속 비행을 담당한 이동규 KAI 수석은 "KF-21이 실제 초음속에서도 안정성이나 시스템적으로 문제없음을 확인한 의미가 있다"며 "이제 초음속 영역을 더 확장해서 이 항공기의 최대 속도까지 문제없이 개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자체 기술로 개발한 초음속 항공기는 개발국의 항공 기술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을 방증하는 셈입니다. 미국 CNN 방송은 1호 시제기가 출고된 2021년 4월 “한국은 자체 개발한 초음속 전투기를 출시해 군사 항공 거인의 독점적 클럽에 합류하고, 최고의 수출 동력 및 일자리 창출을 희망하는 52억 달러 규모 프로그램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KF-21 보라매 제원. 그래픽=송정근 기자

北 전역 타격할 수 있는 ‘창’ 갖추고 높이 나는 보라매

주변국과의 전쟁이 발생했을 때 KF-21의 가치는 더 큽니다. KF-21은 레이더에 잘 띄지 않는 ‘저피탐’ 형상 설계를 적용했습니다. 조종사를 감싸고 있는 캐노피, 주날개와 보조날개에는 전파의 반사를 막아서 '레이더 반사 면적(RCS)'을 크게 감소시키는 레이더흡수물질(RAM)을 적용한 점이 대표적입니다. 개량형에서는 내부 무장창에 무기를 탑재해 레이더 피탐 가능성을 더 줄일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상 스텔스 기능을 탑재한 셈입니다.

장착할 수 있는 무기도 다양합니다. 공대공 미사일로는 영국제 미티어와 독일의 IRIS-T 탑재가 가능합니다. 미국제 AIM-120 암람과 AIM-9 사이드와인더 역시 사용이 가능하죠. 방사청은 지난해 12월 12일 “2028년까지 약 1,900억 원을 들여 KF-21 전투기에 탑재할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체계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군은 현재 미국산 전투기 F-15K에 독일과 스웨덴이 공동 개발한 KEPD 350 ‘타우러스’ 미사일을 장거리 공대지 전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외형이 타우러스와 유사해 ‘한국형 타우러스’로도 불리는 새 미사일의 목표 사거리는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500㎞ 이상인 타우러스와 유사한 수준으로 개발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휴전선 인근에서 발사한다면 사실상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죠. 가장 유력한 ‘적’인 북한의 기술력을 감안한다면 KF-21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용한 무기가 될 전망입니다.

지난 2011년 7월 14일 경남 사천시 공군 제3훈련비행단에서 거행되는 국산 최초의 비행기 '부활호' 개량복원 기념식을 앞두고 '부활호'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부활호는 지난 1953년 10월 10일 공군사천기지에서 조립, 제작됐으며 1960년까지 공군의 정찰, 연락과 초등훈련용으로 사용된 2인승 경비행기다. 공군 제공

‘부활’호로 시작한 한국 항공역사 70년 만의 쾌거

6·25 전쟁이 끝나고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1953년 10월 11일, 국산 제1호 항공기 ‘부활’호가 하늘을 날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경비행기와 훈련기, 전투기 등이 있긴 했지만 자체 생산 항공기는 꿈도 꾸지 못할 시점이었죠. 항공기를 만드는 데에는 최고 기술력이 필요했는데 일제 치하에서 36년, 광복 후 고작 5년 만에 3년간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항공기 제작 기술을 갖추는 건 어불성설이었죠.

하지만 자주국방이라는 꿈을 버릴 수 없었던 신생 대한민국은 항공기 개발의 길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당시 이원복 공군 소령을 중심으로 공군기술학교 정비대원 27명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항공기의 부품 외에 동체 및 날개를 독자적인 기술로 설계해 국산 1호 경비행기 ‘부활’호를 만들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름을 지었죠. 말 그대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신생 대한민국의 부활을 알린 셈입니다. KF-21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제 전투기를 수입하던 우리 항공전력이 해외로 날개를 펼치는 새 출발입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지난해 9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시회(DX코리아 2022) 부스에 첫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의 함재기용 파생형인 'KF-21N' 모형을 전시했다. 사진은 'KF-21N' 모형. KAI 제공

함재기 개발도 검토… 우리 군 주축 전투기 꿈꾼다

아직 갈 길은 남아 있습니다. KF-21은 음속 영역에서의 고도와 속도를 더욱 높여 나가면서 초음속 구간에서의 비행 안정성을 점검 및 검증하고, 이를 체계개발에 지속 반영해 진정한 초음속 전투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방위사업청은 밝혔습니다.

KF-21은 2024년 무장시험 및 초도양산을 시작합니다. 2026년까지 체계개발이 완료되면 ‘블록 1’ 실전배치가 진행됩니다. 2028년까지 우리 1차 도입분 40기와 공동개발국 인도네시아 도입분 50대, 총 90대를 양산합니다. 공대공 임무와 제한적 공대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26년부터 2028년까지는 무장 확보 능력을 통한 ‘블록 2’ 개량사업이 진행됩니다. 성능이 개량된 KF-21은 2029년부터 2032년까지 양산을 진행, 80대가 우리 공군에 실전배치됩니다. F-4, F-5 등 노후 전투기를 대체하는 동시에 KF-21이 공군력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나리오입니다.

해군이 도입을 추진 중인 항공모함에 탑재할 수 있는 함재기형 KF-21N도 개발을 검토 중입니다. 미국산 F-35B 함재기의 가격이 상당한 만큼 국산 모델로 대체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KAI는 지난해 9월 KF-21N 모형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기술로 만든 우리 전투기가 우리 군의 핵심전력으로 활약할 날이 그리 머지않았습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