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대공수사는 해외와 연결돼 있어서 국내 경찰이 수사를 전담하는 것에 대해선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7일 "경찰이 대공수사 능력이나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대공수사권이 2020년 말 개정 국정원법에 따라 내년부터 경찰로 이관되는 상황에서, 정부·여당 수뇌부가 한목소리로 국정원 수사권 유지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간 각본을 짠 듯한 집권층의 행보에 비춰볼 때 예견된 수순이다. 새해 들어 북한 연계 지하조직 수사를 본격화한 국정원이 지난 18일 민주노총 본부 등을 압수수색하자, 다음 날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대공수사권 이관은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또한 국정원·경찰을 중심으로 대공 합동수사단을 상설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국정원은 지난해 정권교체 직후 대북·대공 전문 인력을 전진 배치하고 국회 출석 의무가 없는 원장 비서실장 직할로 방첩 조직을 신설하며 수사권 사수 의지를 일찌감치 드러냈다.
대공수사의 특수성, 엄중한 안보 현실을 감안하면 수사권 이관에 대한 정부의 우려를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국정원법을 개정하며 올해까지 3년 유예기간을 뒀지만 경찰이 수사권을 온전히 넘겨받을 만큼 준비됐는지 의문이다. 또 국정원의 대공정보 수집 기능은 계속되는 만큼 내년 이후에도 경찰 수사에 국정원 협조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법 재개정 없이 국정원에 수사권을 남겨두는 편법을 쓰면 곤란하다. 합동수사단을 운영하더라도 올해로 그쳐야 한다. 개정법 취지대로라면 국정원은 유예기간에 경찰과 긴밀히 협업해 수사 역량을 전수할 책임이 있었는데도 지금껏 외면해왔다. 무엇보다 국정원법 개정의 뜻은 존중돼야 하고, 수사권 되돌리기가 문제 해결의 능사도 아니다. 비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수사권까지 쥐고서 대공수사를 탄압이나 정치개입 도구로 악용해온 흑역사를 근절하자는 법의 취지를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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