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브랜드다

입력
2023.01.28 04:30
22면
구찌 제공

구찌 제공

한 연예인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한 경험담이다. 미국에서 험한 산을 오르다가 길녘에서 한글 팻말을 봤는데, 거기에는 '고사리 꺾으러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험한 길에서도 고사리가 보이면 들어가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니 경고 문구를 아예 한글로 제작한 것이란다. 그 한글 한 줄에 한국인을 말하는 여러 정보가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산을 즐겨 다니는 한국인의 취미, 고사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성, 산에서 나는 자연물을 채취해도 된다고 보는 한국인의 생각 등 말이다. 한글은 한국을 말해주는 표식이다.

한글을 못 읽는 외국인들에게 한글은 어떻게 보일까? 어떤 유학생은 한글 '옷'에서 옷을 입고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연상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눈으로 가만히 살펴보면 한글에서 실재 모양이 살아난다. 한글 '꽃'에서는 산들바람에 고개를 끄덕이는 꽃 한 송이가 보인다. 한글 '산'에서는 듬직하게 버티는 뒷산이, 한글 '봄'에서는 화분에서 자라난 봄 순이 보인다. 신기하게도 '길'에서는 인생의 여정과 같은 길이, '물'에서는 생기를 담고 물이 종이 위로 스며 난다. 애정이 깃든 눈이 생기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명품 브랜드 '디올'이 BTS의 지민을 홍보대사로 선정하였다는 소식과 더불어, 최근 '구찌'가 한글로 로고를 새긴 제품을 내놓았다는 기사를 봤다. 지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미라 해도, 디자인만으로도 다 안다는 명품 옷에 굳이 한글로 로고를 새긴 것은 102년 구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뉴스 두 건의 의미는 성격상으로도, 판매 전략상으로도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 세계적인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선정된 의의에 견줄 만큼, 한글도 하나의 국가 브랜드로 인지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글을 가장 예쁘게 써 보려 한 때가 언제였던가? 아마도 작은 손에 연필을 잡고 처음으로 이름을 쓰던 때가 아니었을까? 한글에 익숙해져 더 이상 새로움이 없을 무렵이면 어느덧 한글을 마음대로 쓰거나 혹은 갈겨쓰고 있는 우리를 보게 된다. 어릴 때 주위 어른들은 글자가 삐뚤면 마음도 삐뚤삐뚤해진다고 했다. 사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누군가의 글자가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참 많다. 한글은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한글의 가치를 밖에서 알아줄 때, 그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도 곧 한국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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