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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정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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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민방위 창설이 처음 검토된 때는 1967년 무렵이다. 북한이 지리산, 태백산, 울산 등 후방지역에서 무장 공세를 강화한 때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북한이 100만 명에 달하는 예비군인 노농적위대를 두고 있는 만큼 대항 조직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민방위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초기 구상은 대간첩 작전까지 나서는 준군사 무장조직 형태였다. 그러나 정보기관, 경찰, 검찰 등 이미 방대한 안보기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준군사 조직 신설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불발된다.
□ 민방위대가 창설된 때는 남베트남 패망 등으로 안보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5년이다. 17~50세 남성이 민방위대 편성 대상이었고 1년 교육시간이 30시간에 달했다(현재 20~40세. 최대 4시간). 민방위대가 대처할 적은 외부의 공산세력뿐이 아니었다. 정권은 ‘불순세력’으로 지칭되는 내부의 용공분자 감시와 색출 기구로 민방위대를 활용했다. 당시 민방위 교육은 간첩이나 거동이상자가 나타났을 때 이를 신고하는 내용을 숙지시키는 내용이었다. 허은 고려대 교수는 박정희 정권에서 민방위대와 반상회가 국민 감시와 통제의 두 축으로 활용됐다고 본다.
□ 민방위대의 정치적 활용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1983년 4월 전두환 정권은 ‘북괴 도발’에 대한 총력안보태세를 갖추겠다며 특공부대, 예비군, 민방위대가 참여하는 ‘멸공83’ 훈련을 실시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상황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권위가 약화된 채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지지율 제고의 수단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는데, 이때 민방위대에 대대적인 지역 방범활동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 주민통제와 동원의 기구로서 민방위의 기능은 약화된 지 오래됐지만 국민의힘 당대표에 도전하는 김기현 의원이 다시 논란에 불을 붙였다. 민방위 기본법을 개정해 성인 여성에게 교통·소방·안전 등 민방위 교육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 법안을 ‘양성평등 병역 시스템의 첫 단추’라고 설명했다. 병역 의무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젊은 남성들의 표심에 호소하는 시도다. 민방위를 정치에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은 시대를 초월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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