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시집살이는 왜 시어머니가 앞장서서 시킬까?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박씨전'은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배경으로 상처 입은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을 꾀한 소설이다. 한양 양반 이득춘은 아들 시백을 금강산에 사는 박 처사의 딸과 혼인시킨다. 박 처사의 딸은 재주는 뛰어나지만 너무나도 못생겼다. 시백과 시어머니는 박씨를 구박한다. 박씨는 후원의 별당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능력을 발휘해 시댁에 기여한다. 3년이 지나 박씨가 허물을 벗고 미인으로 변신하자 비로소 시댁 사람들은 그를 가족으로 인정한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전반부이다. 후반부는 병자호란이 배경이다. 박씨는 청나라 왕이 조선의 인재를 해치려는 것을 미리 알고 전쟁 전부터 이시백과 임경업을 보호한다. 남편을 통해 전쟁 대비를 조정에 건의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쟁이 발발하자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란한 끝에 항복한다. 그러나 박씨는 적장 용홀대를 죽이고 복수하러 온 용골대에게 호통을 친다. 왕은 박씨를 충렬부인으로 봉한다.
소설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응을 이루는 구조다. 박씨의 진가를 몰라보고 못생겼다고 구박하다가 미인인 본모습을 드러내자 그제서야 잘해주는 남편 이시백은 전반부의 '한심남'이다. 소설 후반부의 '찌질남'은 인조다. 전쟁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인재들을 제대로 못 알아보고, 활용하지 못해 패전하는 한심한 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중들이 이 소설을 즐길 당시는 왕조 시대로 함부로 왕을 욕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가부장제 유교 사회였기에 시아버지 이득춘이나 남편 이시백도 그다지 부정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대놓고 어리석게 그려지는 인물은 여성인 시어머니뿐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추악한 박씨'라고 부르며 구박하는 반면 시아버지는 박씨를 보호해준다. 아니, 가부장제의 정점에 있는 사람은 시아버지인데 왜 시집살이는 시어머니가 앞장서서 시키는 것일까? 젠더살롱, 이번에는 '시어머니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이 코너에 연재글을 쓴 이후, 어떤 소재를 꼭 다뤄 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잘못된 남성으로 인한 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쓸 때마다 다음과 같은 댓글을 많이 받았다. "여자가 더 심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시어머니의 폭력은 왜 고발 안 하느냐?" 이러한 독자들의 관심에 보답하고자 이번 글을 쓴다. 사실 예로 들 만한 사건은 이미 많이 수집한 상태였다. 제보받을 것도 없이, 내 주변의 사례만 해도 차고 넘친다. 그러나 글을 쓰는 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실례를 칼럼에 쓰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 구상했지만 결국 이번에도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나 케케묵은 역사 속 인물을 예로 들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시어머니들은 왜 그럴까? 본인 가족에겐 헌신적이고 신앙생활도 모범적이며 봉사도 하는 선량하신 분들도, 왜 며느리에게만 부당하게 대하고 폭력적으로 구는 걸까?
지난번 젠더살롱에 쓴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보자. 20세기 초까지 유럽 상류층 남아들은 드레스를 입었다. 그러다가 반바지를 입고, '브리칭(Breeching)'이라는 착복식을 거쳐 성인 남성의 긴바지를 입었다. 이 풍습을 보면 여자처럼 드레스 입는 아기에서 반바지 입는 예비 남성, 긴바지를 입는 진짜 남성까지 남성 사회에는 단계적으로 권력의 서열이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썼다.
그럼 영원히 드레스를 입어야 했던 여성들은 어떻게 해야 권력을 가질 수 있을까?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은 남성과의 혈연관계나 성관계 등 육체를 통해 권력을 받는다. 바로 아버지나 남편, 아들과의 관계로 생기는 권력. 편의상 공주, 왕비, 대비 권력이라 칭하겠다.
그러나 강력한 권력자의 딸로 태어나는 것은 마음대로 안 된다. 잘난 남편과 결혼을 통해 얻는 권력이란 남편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빼앗긴다. 아무리 내조를 잘해봤자 남편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기에 공주 권력과 왕비 권력은 획득 여부가 불확실한 권력이다. 지속성도 불안하다. 가장 강력한 권력은 아들을 낳아 '대비(大妃) 권력'을 갖는 것이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각 가정의 왕이기 때문이다. 출세하지 못한 아들이어도 상관없다. 남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권력을 획득한 것이기에 아들은 남자로 낳아준 친어머니의 은혜에 평생 고마워해야 하니까.
대비 권력을 강력히 행사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자신을 큰아버지에 이어 황제가 되게 만들어준 어머니 조피 대공비(Sophie Friederike von Bayern, 1805~1872년)에게 휘둘려 아내 엘리자베트 황후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이는 뮤지컬 '엘리자벳' 전반부에 잘 그려져 있다.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인수 대비(仁粹大妃, 1437~1504년)는 아들 성종을 조선의 왕위에 올린 후, 며느리(폐비 윤씨라 불린다)를 미워하여 폐위와 사사(賜死)에 앞장섰다.
무리한 예일까? 조피 대공비와 인수 대비는 왕실의 진짜 대비였으니 일반 가정에서는 다를까? 아니다. 권력이란 상대적인 것. 청 태종 앞의 인조는 머리를 조아리는 낮은 신분이지만, 조선인들 앞에서는 지존 아닌가. 마찬가지다. 엄격한 가부장제 가정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자는 시집 온 타성(他姓)바지 여성이다. 그 여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려면 다른 어린 여성이 그 집에 시집와야 한다. 이리하여 일반 가정의 시어머니라도 아들을 결혼시켜 며느리를 얻음으로써 대비 권력을 갖게 된다. 결혼하지 않은 성인 아들이 본가에 가면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결혼을 재촉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비 권력을 휘두르고 말고는 오직 시어머니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으니 아무리 21세기라도 성차별 사회의 며느리는 상대적 약자의 처지에 있게 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간섭하고 심술부리면 본인의 지위가 올라가서 권력자가 된 쾌감을 느낄 수 있으니 굳이 권력 행사를 자제할 필요가 없다. 물론 모든 시어머니가 다 잘못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시어머니가 일부러 못되게 굴려 하지 않고 평소 보고 들은 대로 행동해도, 며느리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이 사회가 워낙 성차별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에.
'박씨전'의 박씨는 구박을 받으면서도 시댁을 위해 능력을 발휘한다. 하루 만에 시아버지의 관복을 짓고, 남편이 장원급제하게 돕는다. 천리마를 싸게 샀다가 되팔아 큰돈을 벌어주기도 한다. 이 부분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약자는 그 존재만으로는 존중받지 못하고 강자 집단의 이익에 기여해야 동등한 집단 성원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전쟁에 공을 세워야 노예가 양민으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듯, 며느리도 오래 노동하고 아들을 낳아야 시댁에서 인정받는다. 그동안 며느리를 구박하여 시댁에 복종하게 만드는 악역은 시어머니가 맡게 된다.
시어머니의 대비 권력 행사는 가부장제 유지, 강화에 도움이 된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마름은 일본인 지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조선인 소작인들에게 더 가혹하게 대하기 마련. 이 마름 덕분에 일본인 지주는 덩달아 이익을 보게 된다. 이를 조선인의 적은 조선인이라며 '조적조'라고 비웃을 수 있을까? 구조는 비판하지 않고.
앞서 인수 대비도, 아들 성종이 반대하는데 홀시어머니의 심술로 며느리 윤씨를 죽인 것은 아니다. 성종은 효도를 핑계로 인수 대비를 내세워 싫증 난 아내를 제거했다. 이렇듯 대비 권력은 오직 가부장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사할 수 있다.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내 아들 밥은 잘 챙기느냐?'며 간섭하고 감시하는 이유다. 대비의 권력은 내명부 관리에만 미치기 때문이다. 아들에게는 내리사랑, 며느리에게는 내리구박. 그렇다, 대비 권력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주어져 행사하기를 장려받는 유일한 권력이었다.
그러기에 시어머니의 권력이 강한 사회일수록 성차별이 심하고 여성 인권이 낮다. 결혼 지참금(다우리·dowry) 문제로 신부 살해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인도의 경우를 보자. 인도 국립범죄기록사무국(NCBR)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 거의 7,000명에 달하는 여성이 지참금 문제로 사망했다. 이 경우에도 며느리를 구박하고 살해하는 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시어머니다.
결국 시어머니의 폭력 문제는 '여적여' 현상이 아니다. 가해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성에 대한 지배와 폭력을 통해 가부장제가 유지되게 만드는 구조 자체의 문제다. 여성의 범죄를 더욱 엄격히 단죄하곤 하는 이 사회가 시어머니의 폭력은 속수무책 방관하고 있는 이유다.
덧. 그렇다고 어르신들과 싸워 댈 필요는 없다. 시어머니가 자기 아들 밥 잘못해 준다거나 아들 못 낳았다고 며느리 구박하는 것은 결국 '이 사회에서 여자라고 차별받았지만 나는 내 할 일을 다했다. 남자들 밥 잘 챙겼고 아들도 낳았다'라는 자기 자랑이다. 서열 낮은 사람 앞에서 평생 구겨진 마음 한번 펴 보는 한풀이다. "네, 어머니는 정말 훌륭하세요!" 박수 친 후 전화 차단하면 된다. 단, 우리부터라도 이 잘못된 패턴을 후대에 대물림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