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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떠나니 폭설… 올겨울이 야속한 '야외 노동자들'

입력
2023.01.27 00:1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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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한파·폭설에 '이중고' 겪어
많이 벌 수 있어 빙판길 강행군도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인근에서 프레시 매니저 김모씨가 전동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나광현 기자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인근에서 프레시 매니저 김모씨가 전동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나광현 기자

“어제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춥더니 오늘은 하염없이 눈이 내리네요….”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 골목에서 요구르트 전동카트를 운전하던 프레시 매니저 김모(62)씨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전날엔 역대급 한파로 고생한 그였다. 아무리 옷을 껴 입어도 한기가 뼛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추위가 다소 잠잠해지니 폭설이 말썽이었다. 도로와 인도 곳곳에 쌓인 눈을 피해 전동카트를 운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김씨는 “27년째 이 일을 해왔지만 겨울 날씨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며 “이런 (느린) 속도로는 예정된 구간을 다 못 돌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손 꽁꽁 얼어도 얇은 장갑에 의존

강풍과 혹한, 폭설이 번갈아 찾아오는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에 ‘야외 노동자’들이 울상짓고 있다. 이틀간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시베리아급’ 추위가 가자마자 끊임 없이 내리는 눈과 싸워야 할 처지다. 거리에 사람이 없다 보니 프레시 매니저들은 수입까지 확 줄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마포구 공덕역 근처에서 전동카트를 세운 채 판매를 하던 이모(66)씨는 “요 며칠 음료를 사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푸념했다. 한 시간 동안 카트 앞에서 발길을 멈춘 시민은 고작 3명이었다.

아파트나 빌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설노동자 나모(54)씨는 전날 얇은 목장갑 하나에 의지해 철골 절단 등 위험한 작업을 수행했다. 두꺼운 털장갑을 착용하면 감각이 둔해져 손이 얼어도 어쩔 수 없다. 나씨는 “사실 원청에서 핫팩도 지급하고 추우면 휴게실에서 쉬라고 하는데, 일한 만큼 버는 구조라 휴식을 택하는 동료는 거의 없다”고 했다. 폭설도 마찬가지다. 공사가 중단되면 일당을 받을 수 없어 시름만 더 깊어진다.

'혹한 기상할증' 라이더 안전 위협 지적도

26일 서울 시내에서 배달기사가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뉴스1

26일 서울 시내에서 배달기사가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뉴스1

부쩍 많아진 배달기사들도 올겨울 날씨는 버겁기만 하다. 안 그래도 오토바이 사고 위험이 큰데 방한화와 겨울 목토시, 패딩 바지로 완전무장을 하고 칼바람과 맞서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이라 방한 장비를 자비로 마련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쓸 만한 방한화나 장갑은 10만 원을 훌쩍 넘고, 오토바이에 부착하는 열선 장치 구입까지 합치면 족히 수십만 원이 든다.

특히 눈이 얼어 만들어진 빙판길이 골칫거리다. 한 번 미끄러지면 대형사고로 이어지지만 수익이 커 일감을 놓을 수도 없다. 배달의민족 등 일부 음식배달 플랫폼은 기온이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가거나 일정량 이상의 눈이 내리면 ‘기상 할증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평상시와 혹한기 피크시간의 배달료 격차가 워낙 크다보니 과속을 하더라도 추울 때 바짝 벌려고 하는 기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위험수당이 지나치게 높아 외려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셈이다. 이날 만난 배달기사 김모(26)씨도 “날씨가 아무리 안 좋아도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며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김도형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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