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김장하 선생의 별, 카노푸스(南星)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경남 진주의 ‘남성당 한약방’. 주인 김장하(79) 선생이 은퇴하며 지난해 문을 닫았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전 편집국장이 “허락받은 적도 없으면서, 허락받은 것처럼” 취재해서 그에 대한 책(‘줬으면 그만이지’, 피플파워)을 냈다. 그 과정을 MBC경남이 동행해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방영,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선생을 존경하는 이들이 하도 많이 도와서 ‘쉬운 취재’였단다.
□ 김 선생은 한약방서 머슴을 살다가 19세에 한약업사 시험에 합격해 한약방을 열었다. 싼값에 좋은 약재를 팔아 사람들이 줄을 섰다. 자산이 모이자 20대부터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지역 곳곳 문화·역사·언론·환경·여성 단체와 개인들을 후원했다. 자신은 자동차 한번 산 적 없다. 1984년 명신고를 개교해 1991년 국가에 기부 헌납(당시 100억 원 규모)했다. 전교조 설립 때, 가담 교사들을 해고하라는 정부 압박도 거부했다.
□ 그는 경제력·성별·신분을 초월한 확고한 평등의식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1944년생 남성인데도, 호주제 폐지를 요구하던 여성단체와 함께했다. 또 진주에서 1923년 발원한 백정 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을 기리기 위해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개인 인터뷰는 늘 사양하지만, 평등권 발언은 적극적이다.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식에서 “오늘날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녀차별, 지역차별, 노인·장애인 차별이 현존한다”고 했다. 지난해엔 “그 차별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 할아버지가 지어준 호 남성(南星). 목숨(壽)을 맡은 이 별이 비치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약방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다들 오래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별빛처럼 표를 내지 말고 공헌하라”는 뜻도 있단다. 이 별은 서양에선 ‘카노푸스’이다.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다. 가장 빛나는 별은 개인의 몫은 아닐 것이다. 한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다 한 것 같다. 그저 남성이 비추어 만수무강하시길.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