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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바다, 다가가면 쓰레기장..."물고기 다 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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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전쟁의 최전선에 태평양 섬나라들이 있습니다. 해발 고도가 1~3m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들은 지구 온난화로 생존을 위협받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변 침식과 해수 범람이 삶의 터전을 빼앗은 지 오래입니다.
태평양 섬나라 14개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1%가 안 됩니다. 책임 없는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부정의이자 불공정입니다.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에 당신의 책임은 없을까요? 한국일보는 키리바시와 피지를 찾아 기후재난의 실상을 확인하고 우리의 역할을 고민해 봤습니다.
이달 11일(현지시간) 키리바시 타라와 섬 바이리키의 한 도로변에 아침부터 생선 노점상이 펼쳐졌다. 주민 트레사 몬티다크르(42)가 물고기 수십 마리를 양동이째 쏟았다. 물고기는 한참을 펄떡거렸다. "오늘 남편이 잡은 것들"이라며 그는 가게 뒤편 통통배를 가리켰다.
키리바시 주민 대부분은 어업으로 먹고산다.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는 본격적인 어업은 아니라도, 가까운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아 가족이 먹을 양만 남기고 파는 영세 어업은 흔하다. 타라와 섬에서 생선 노점을 찾기는 서울에서 편의점을 찾는 것만큼 쉽다.
키리바시 경제는 전적으로 바다에 의존한다. 수산자원이 풍부한 어장 덕분이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이 해외 수산회사에 어업 면허권을 판매한 수익에서 나온다. 참치 어장은 세계 최대 규모다. 키리바시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선 매년 70만 톤 넘는 참치가 잡힌다. 한국 원양어선이 잡는 참치의 절반 이상도 이곳에서 나온다.
키리바시 경제의 등뼈인 참치 어업에 최근 들어 짙은 먹구름이 꼈다. 영세 어부들이 먼저 변화를 느낀다. 1973년부터 50년 넘게 고기잡이를 했다는 티아온 바티아(72)는 "1980~1990년대에는 하루에 잡히는 참치가 100마리 안팎이었는데 요즘은 20마리 잡히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늘 잡던 장소에서 참치가 사라져 20km 정도 더 먼바다로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15세부터 어부로 일한 메타 부라(29)의 증언도 같았다. 메타는 "멀리 나가야 참치가 많은데, 고깃배에 넣을 기름값이 너무 비싸 가끔만 나갈 수 있다"고 했다. 키리바시는 석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기름이 워낙 귀해 "생선값의 오르고 내림은 언제나 기름값에 달렸다"고 할 정도다. 참치 서식지가 멀어질수록 연료를 더 써야 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키리바시의 참치 기근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 때문이다. 주요 참치 어종인 가다랑어, 황다랑어, 눈다랑어 등은 서식지의 수온이 오르면 더 쾌적한 환경을 찾을 때까지 장거리를 이동한다. 2021년 호주 국립해양자원보안센터(ANCORS)의 요한 벨 객원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이가 계속된다면 2050년엔 키리바시를 포함한 태평양 섬나라 10개국 해역에서 가다랑어, 황다랑어, 눈다랑어 개체 수가 평균 13% 감소할 수 있다. 어업 말고는 대안 산업이 없는 키리바시 경제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중국과 대만 어선의 불법 어업과 쓰레기 투척으로 인한 해양 오염은 어획량 급감의 또 다른 원인이다. 최근엔 일본이 방류하겠다고 통보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도 국가적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헨리 푸나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사무총장은 지난 18일 피지 수도 수바에서 열린 PIF 회의에서 "원전 오염수 방류로 태평양 섬나라들의 주요 수입원인 어장의 방사선 오염이 우려된다"며 "오염수 방출의 안전이 완벽하게 확인될 때까지 오염수를 배출하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일본은 귀담아듣지 않을 태세다.
티아온은 자신의 뒤를 이어 어부가 된 아들을 걱정한다. "이러다가 정말 다음 세대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어지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메타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래서 아이가 생기면 고기잡이는 시키지 않을 계획이다. "자식들은 오래 공부를 시킬 거예요. 더 좋은 직업을 갖게 하고 싶어요."
타라와의 바다는 '멀리서 봐야' 아름다웠다. 진파랑, 초록, 에메랄드… 색색의 아름다움은 가까이 갈수록 흐려졌다. 어디에나 가득한 쓰레기 때문이다. 해변에는 캔, 유리, 고철 등 갖가지 쓰레기가 엉켜 나뒹굴었다. 가까운 바다엔 물고기 대신 플라스틱 쓰레기가 둥둥 떠다녔다. 해수가 오염된 탓에 포말은 노르스름했다.
마을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주민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와 태평양에서 흘러들어 밀물을 타고 마을 안으로 밀려든 쓰레기가 이곳저곳에 산처럼 쌓여있었다. 민간 차원에서 종량제 봉투 사용과 쓰레기 재활용 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하지만, 효과는 없어 보였다.
타라와 섬에선 쓰레기를 처리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31제곱킬로미터의 좁은 땅에 매일 9.7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간다. 매립은 턱도 없고 쓰레기 수출도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 답은 소각뿐이다. 어딜 가나 쓰레기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이유다.
타라와 섬 암보 시내에 위치한 기자의 숙소에도 오전 8시부터 연기가 가득 찼다. 옆집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는 연기였다. 냄새도 독했다. 담장 너머를 보니 덤프통에 옷과 음료수 캔, 나뭇가지 등을 넣어 한꺼번에 태우고 있었다. "왜 이 아침부터 쓰레기를 태우느냐"고 옆집 주민에게 따졌더니, "태워도 괜찮다. 연기는 안전하다. 걱정하지 말라"고 기자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는 정말 그렇게 믿는 듯했다. 타라와를 떠날 때까지 아침 매연은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쓰레기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다. 처리되지 않은 오물은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쓰레기 더미에 모기, 쥐, 파리가 꼬여 뎅기열 같은 전염병이 퍼진다. 쓰레기를 태우는 매연 때문에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많다. 타라와 섬의 명물인 산호가 백화현상으로 영구히 파괴되는 가장 큰 원인도 쓰레기와 오물이다.
타라와 섬의 환경·경제·정치적 취약성을 종합평가한 보고서인 '코비(CORVI) 기후위기 리포트'를 작성한 나탈리 페레츠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키리바시는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줄이고, 다시 사용하고, 재활용해서 순환 경제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키리바시가 대응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싶어도 예산과 기술이 부족한 탓이 크다"며 "각국 정부와 기후 펀드, 세계은행의 국제개발협회(IDA) 같은 금융기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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