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로 식량안보 3부능선 넘기

입력
2023.01.25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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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이 부족하던 시기, 우리는 다수확 품종과 농업기술을 활용해 '식량안보의 1부능선'을 넘었다. 양적인 식량안보가 강조되던 1978년 식량 증산과 그에 따른 수입 대체 효과가 약 1조6,000억 원(1989년 불변가격)의 가치로 추정된다는 보고가 있다. 식량 증산에 힘입어 산업화, 도시화가 촉진되었고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쌀 생산성이 이제는 오히려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 딜레마가 생겼다.

새해가 되어 국정 전면에 등장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업인의 소득 보전과 국가 식량안보를 위한 것이라는데, 여야 정치권에서 상반된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쌀 가격도 기본적으로 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될 텐데, 쌀 가격과 재고량이 왜 문제가 될까. 이 문제에 대해 벼 육종학자로서 궁금하여 몇 가지 알아보기로 했다.

식문화의 다양화는 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육류, 수산물, 채소 소비국이다. 그러다 보니 쌀 소비량은 계속 감소한다. 한편, 소비자는 '착한 소비'라는 측면에서 친환경 쌀을 선호하고, 정부 보조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불한다. 소비자가 선호하면 비싸지는 것은 농산물, 특히 쌀도 마찬가지다. 선진화된 농식품 시장에 대응하는 최적의 농산물을 공급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식량안보의 2부능선'을 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처럼 수요량을 초과하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격리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쌀 농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정안의 논리대로라면 안정적인 농업소득을 위해 평생 부가가치가 낮은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량에 매몰되어 다수확 농법에 주목한 나머지 품질을 놓치게 되면, 그렇게 생산된 쌀을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정해진 가격으로 전량 수매하기 때문에 농업인들은 오히려 정해진 소득수준 안에 갇히게 되고, 혁신적인 농업을 시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식량안보를 위해 넘어야 할 '3부능선'은 무엇일까. 쌀 산업에서도 '지속가능한 발전'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첨단 부가가치 쌀가공 기술 개발, 기후변화에 대응한 종자 개발과 환경 농업 등을 포함한 쌀 산업 전체 분야에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사준다면 농업인들은 화학비료와 물 사용량이 많은 다수확 농법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고, 새로운 병해충이 창궐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과도 모순된다.

요컨대 쌀 소비량이 늘지 않고 시장가격은 하락하는 상황에서, 그 효과를 고려하여 재정 투입은 신중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격리 의무화가 아니다. 농업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의 아이디어와 의욕적 참여가 바탕이 되는 기반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만드는 것이다. '식량안보의 3부능선'을 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현명한 결단이다.


진중현 세종대 스마트생명산업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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