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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도 화재 점검했지만… 구룡마을 판잣집 밀집해 불에 취약

입력
2023.01.20 19:00
수정
2023.01.2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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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후에만 8차례 화재 발생해
합판, 천막 등 불에 잘 타는 재질 많아
난방기구 사용으로 겨울철 위험 증가
무허가 주택 많아 대책 마련도 한계

20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소방대원이 잔불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20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소방대원이 잔불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의 마지막 무허가 판자촌’으로 불리는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또다시 화마에 휩싸였다. 이틀 전 관계기관이 마을 내 소방시설 점검까지 했지만 이번에도 화재를 막지 못했다. 합판 등 불에 취약한 자재로 지어진 집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어, 화재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강남구청 등에 따르면,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는 2012년 이후 현재까지 최소 8차례다. 지난해 3월에는 마을 입구에서 시작된 불이 인근 대모산까지 번졌고, 2014년에는 고물상에서 불이 나서 주민 1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9년에는 한 해에 세 차례나 큰 불이 발생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에게 화재는 일상이나 다름 없고, 특히 겨울철이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집집마다 소화기를 비치해 두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날도 화재 직후 “불이야”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주민들이 소화기를 들고 뛰쳐 나왔다. 하지만 불길이 삽시간에 거세져 진화보다 대피가 먼저였다는 게 주민들 전언이다.

20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구역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구역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룡마을 집들은 대부분 합판과 널판지, 천막, 스티로폼 등으로 얼기설기 지어져 화재에 취약하다. 지붕도 장판과 비닐을 씌워 비바람만 간신히 막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불에 잘 타는 자재로 지어진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탓에 작은 불씨에도 불길이 크게 확산된다. 골목이 좁아 소방차나 소방대원 진입이 어려워 초기 진압도 쉽지 않다. 이날도 화재 발생 5시간 만에 주택 60채가 전소됐다.

겨울철에는 난방기구 사용이 늘어 누전이나 합선 위험도 크다. 구룡마을에는 액화석유가스(LPG)와 석유, 연탄을 사용하는 집들이 많다. 70대 주민 장원식씨는 “며칠 전에도 덜 꺼진 연탄에서 불똥이 튀어서 벽에 불이 붙은 집이 있었다”며 “불이 나면 창고에 놔둔 석유통이나 가스통 때문에 큰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겁이 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구룡마을 집 대부분이 무허가라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예산 지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강남구청도 마을 소방시설과 가스배관, 노후설비 등을 점검ㆍ교체하는 등 화재 예방에 힘쓰고 있지만, 화재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은 쉽지 않다.

이틀 전에도 강남구청과 개포소방서,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합동으로 소방 안전 점검을 했지만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70대 주민 지흥수씨는 “집을 제대로 고치고 싶어도 무허가라서 구청 단속에 걸린다”며 “불이 자주 나더라도 이대로 사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수시로 화재 예방 교육을 하고 있지만, 집 자체가 워낙 열악해 불시에 닥치는 화재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구룡마을 피해 수습을 위해 특별교부세 5억 원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지원금은 구룡마을 이재민 구호 활동과 화재 현장 잔해물 처리, 출입 통제시설 설치 등에 쓰일 예정이다.

김표향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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