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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대표'에서 '애물단지 감투'로...전경련 회장 자리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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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사임으로 12년 만에 수장이 바뀌게 됐습니다. 재계 총수들을 이끌며 정부의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하는 워낙 중요한 자리라 아직까지 다음 회장 후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는데요. 올해 한국 경제는 대내외 리스크 요인으로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전경련 회장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달 23일 열릴 정기 총회에서 정해질 새 전경련 회장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전경련 회장은 420여 개 회원사를 대표하며 전경련 사무국, 한국경제연구원 등 소속 직원 80여 명을 책임지는 자리인데요. 비상근이라 보수나 판공비는 없고 오히려 회장이라서 필요에 따라 회비, 기부금 등을 많이 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계 입장을 대변하다 보니 때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부담이 큰데요.
전경련이 태어난 배경 역시 정부의 재벌 개혁 드라이브에 맞서기 위해서였습니다. 1960년 장면 내각과 이듬해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자유당 정권에서 급성장한 삼성과 삼호, 럭키화학, 현대건설 등 기업 총수들을 부정축재자로 지목하며 처벌에 들어갔는데요.
당시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면담을 가졌고, 산업 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는 명분으로 기업인들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재벌들은 이를 계기로 일본의 게이단렌(경단련)처럼 자신들을 대변할 단체 결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는데요.
결국 이 창업주와 이정림 대한양회 회장, 설경동 대한방직 회장 등 13인을 중심으로 '경제재건촉진회'가 1961년 8월 꾸려졌고, 첫 회장으로 이 창업주가 뽑혔습니다. 이 단체가 '한국경제인협회'를 거쳐 1968년부터 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불리게 됐는데요.
초대 회장인 이 창업주는 전경련 회장직을 1년만 맡았는데 그가 생전에 가졌던 유일한 대외 직함이었다고 합니다. 이 초대 회장은 경제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민간외자도입교섭단을 미국과 유럽에 보내 경제 협력의 기틀을 다졌으며, 전경련에 조사부를 설치하고 사무국 직원의 공채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는데요.
2대 수장 이정림 회장은 연임을 하며 울산공단과 한국수출산업공단(구로공단) 설립을 건의하는 등 경제 재건에 힘을 보탰습니다.
초기 회장들이 이처럼 부정축재자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한국 경제 재건에 적극 나서다 보니 이후 회장 자리를 맡으려는 총수들이 쉽게 나서지 않았는데요. 대부분 상당한 진통을 거친 뒤 추대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병철, 구자경(18대), 손길승(28대) 회장을 빼고 모두 두 차례 이상 연임하며 재계의 힘을 한데 모으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13대부터 17대(77~87년)까지 10년 동안 전경련을 이끌며 재계 전성시대를 만들었습니다. 88서울올림픽 유치에 힘을 보탰고 최초의 비영리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세웠어요. 또 기업의 장기자금 조달 지원을 위한 대형 민간은행인 한미은행을 창립했고, 숙원사업이었던 전경련회관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지었습니다.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전경련 21대 회장으로 취임했는데요. 최 회장은 국가 경쟁력 강화와 규제 개혁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다 관료들과 잦은 마찰을 빚어 대규모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재계의 두터운 신망을 받던 최 회장은 그러나 1998년 8월 별세했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뒤를 잇습니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 대우를 짧은 기간에 4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경련을 다시 재계의 중심으로 키웠어요. 그는 "재계 대통령이 된 것 같다"며 전경련 회장직에 애착을 갖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는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대기업 중심으로 수출을 크게 늘리면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다는 '500억 달러 무역 흑자론' 등을 주장하다 정부와 불협화음을 냈어요. 김 회장은 결국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시련을 겪은 뒤 1999년 해외로 도피하면서 전경련 창설 이후 임기를 모두 채우지 않고 물러난 첫 수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28대 회장인 손길승 SK 회장 역시 2003년 2월 취임한 뒤 8개월 만에 중도 하차하며 역대 전경련 회장 중 최단 임기 기록을 써야만 했는데요. 평사원으로 입사해 SK 총수와 전경련 회장에 오르는 신화의 주인공이었지만 SK네트워크 분식 회계, SK해운 비자금·불법 정치자금 전달, SK해운 탈세 의혹 등으로 낙마했습니다.
허창수 GS 회장은 33대 전경련 회장으로 2011년 2월 취임해 현재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6회 연속이자, 12년 재임한 역대 최장수 전경련 회장입니다.
허 회장은 너른 인맥을 바탕으로 국내 정재계 인사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고, 민간 경제 외교에도 힘썼는데요. 특히 정치적으로도 가까운 미국과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며 전경련 최대 위기를 맞게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마저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조직을 축소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죠.
허 회장은 2017년 당시 정경유착 근절, 불필요한 조직 축소, 단체이름 변경, 싱크탱크 전환 등 혁신 방안을 내놓으며 반등을 노렸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단체 이름 변경조차 정부, 회원사 등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뜻을 이루는 데 실패했어요.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전경련 패싱' 굴욕을 당하며 재계 맏형 역할을 대한상공회의소에게 내줘야만 했습니다. 허 회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전경련의 위상 재정립을 노렸지만, 대통령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고 결국 최근 사퇴 의사를 부회장들에게 전해야만 했죠.
전경련은 다음 달 23일 허 회장을 이을 39대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정기총회를 엽니다. 회장은 총회에서 선임하도록 돼 있지만 사실 그전에 의견 조정을 거쳐 차기 회장 후보를 확정한 뒤 총회에선 추대 후 박수로 통과시키는 게 관례였어요.
차기 회장은 김승연 한화 회장 등 9명의 부회장 멤버 중에 선임되는 게 원칙인데 현재 자천 타천으로 거론되는 유력 후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김윤 삼양 회장 등입니다. 그러나 대상자들이 손사래를 치고 있어 추대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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