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이 촛불 든 게 그렇게 불편한가

입력
2023.01.20 04:30
26면

촛불중고생시민연대 소속 중고등학생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열린 촛불대행진에서 후원모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촛불중고생시민연대 소속 중고등학생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열린 촛불대행진에서 후원모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지난해 말 국고보조금을 받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보조금 사용 현황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를 주최했던 '촛불중고생시민연대(촛불연대)'를 보조금 부정수급의 대표 사례로 제시했다.

세금을 지원받고 있다면 시민단체라도 정부의 관리 감독에서 예외일 순 없다. 촛불연대 측이 부정수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만큼 진위 여부는 곧 가려질 것이다. 실제 부정수급이 있었다면 환수하고 필요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면 된다.

주목할 점은 정부가 보조금 전수조사에 나선 배경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중고생이 촛불을 들게 한 데(단체에) 지원금이 나간 것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보조금의 집행 실태와 규모를 파악해 봤다"고 말했다고 한다.

촛불을 손에 쥔 주체가 성인이 아닌 '중고생'이라는 점이 퍽 불편했던 모양이다. 얼마 전 '윤석열차' 사태가 떠오른다. 한 고등학생이 대통령 얼굴을 한 기차가 달리고, 놀란 사람들이 황급히 도망가는 그림으로 정치풍자만화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애당초 공모전 주제가 '정치풍자'였고, 대상이 고등학생이었다. 논란이 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에서 문제가 있다며 군불을 피우자 정부가 곧바로 응답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행사 취지에 어긋난 작품을 선정해 전시했다며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 경고를 내렸다.

이 정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서 중고생은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조소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촛불을 '든'이 아닌 '들게 한'이라 표현한 것도 현 정권의 시각에서 보면 자연스럽다. 중고생이 현 정권을 비판하는 정치 활동에 참여한 건 자발적 의지는 아닐 거란 인식이 묻어난다. 최근 촛불연대에 비판적인 기사에서도 '고교생의 정치 동원' '참여 종용'이란 말이 흔히 사용되고 있다. 여당은 한발 더 갔다. "정권 퇴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 학생들을 정치적 '볼모'로 삼았다"는 수석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냈다.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한 편의 배구 경기를 보는 듯하다. 언론이 운을 띄우고(정확한 리시브), 정부·여당이 화답하면(절묘한 토스), 검경이 강제 수사에 나서는(강력한 스파이크) 그림 말이다.

그런데 이거 많이 보던 장면이다. 2005년 청소년들이 두발 자유화 촉구 집회에 참가하려 하자 교사와 장학사들이 수백 명씩 동원돼 집회장 주변을 지켰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 때도 교육청에서는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집회에 청소년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지도해 달라고 했다. 교사들을 동원해 참가한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때도 "철없는" "감수성이 예민한"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가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전교조가 배후에 있다" "청소년이 놀 곳이 없어서 거리에 나왔다"는 분석도 넘쳐났다.

결론적으로 "청소년이 틀렸다"는 걸 아무도 입증하지 못했다. 당연한 이치다. 애당초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누가 시켜서 움직인 게 아니다. 옳고 그른 게 뭔지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한 것이다.

윤태석 사건이슈팀장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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