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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한 친구 밤새 흙으로 덮어주는 코끼리···동물들도 장례 치른다

입력
2023.01.20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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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코끼리 두 마리가 코를 휘감으며 다정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 같은 인사는 야생 상태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유대를 형성해 두 마리 모두 살아남게 한다. 출판사 제공

코끼리 두 마리가 코를 휘감으며 다정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 같은 인사는 야생 상태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유대를 형성해 두 마리 모두 살아남게 한다. 출판사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동물원이 암컷 코끼리를 안락사시켰다. 발을 다쳐 생존이 어려워지자 나름의 배려로 편안한 죽음을 안겼다. 하지만 가까웠던 코끼리 두 마리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두 코끼리는 밤새 번갈아 가며 죽은 친구 사체 곁을 지켰고, 반복적으로 흙을 뿌려 몸을 덮어 줬다. 모잠비크에서 잡혀온 이들은 야생에서 경험한 애도와 매장의 의례를 동물원에서 재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만 죽음을 애도하고 장례를 치른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다.

동물들도 의미가 담긴 행동, 의례를 행한다. 세계적 동물학자 케이틀린 오코넬이 책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에서 보여준 자연의 얼굴이다. 저자는 인사, 집단, 구애, 선물, 소리, 무언, 놀이, 애도, 회복, 여행 등 열 가지 의례를 통해 동물들이 약육강식의 야생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삶의 모든 면에서 동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의례를 행한다. 덕분에 동물들은 험난한 세상에서 기어코 살아남는다. 예의를 갖춰 의식을 치르는 동물에 배울 점이 많다.”

동물은 인사를 귀찮아하지 않는다. 물웅덩이에서 마주친 수컷 얼룩말들은 가볍게 목덜미를 물며 인사를 나눈다. 수컷 검은코뿔소들은 검객처럼 뿔을 맞대며 긴장을 푼다. 인사는 친밀감을 형성해 싸움을 피하는 중요한 의례다. 새해를 맞아 ‘회복 의례’를 치르는 동물도 부지기수. 야행성 해변쥐는 매년 봄이면 오래된 씨앗 껍질을 굴 밖으로 내다 버리고, 찌르레기는 신선한 녹색 잎으로 둥지를 재정비한다.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ㆍ케이틀린 오코넬 지음ㆍ이선주 옮김ㆍ현대지성 발행ㆍ358쪽ㆍ1만8,000원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ㆍ케이틀린 오코넬 지음ㆍ이선주 옮김ㆍ현대지성 발행ㆍ358쪽ㆍ1만8,000원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는 격언은 동물 세계에서도 통한다. 암사자는 종종 사냥한 먹이를 다른 암컷들과 나눈다. 신뢰를 쌓은 암컷들은 난폭한 수컷이 자기 새끼를 해치지 못하도록 연대한다.

껴안기, 가만히 바라보기, 노래하기, 가까이 가기 등은 동물 무리의 질서를 유지케 하는 ‘무언(無言) 의례’다. 서열이 낮은 늑대는 우두머리 늑대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조아린다. 이런 엄격한 위계질서 덕에 늑대 무리는 영역을 지키거나 사냥할 때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다.

기린은 서로 목을 감싸 애정을 확인하고, 코끼리거북은 토마토를 선물하며 구애한다. 돛새치 무리는 집단으로 진을 치고 사냥감을 잡는다. 동물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의례에 충실하며 고독한 생존에서 벗어나 거대한 공존 상태로 나아간다. 보다 우월하다는 인간은 이념, 세대, 종교 등 온갖 요인으로 쪼개지고 갈라져 가는데도. 어쩌면 현대 사회를 치유할 묘약은 복잡한 사회 제도를 만들거나 탁월한 지도자를 뽑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타고난 의례 능력을 회복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적 동물학자이자 코끼리 연구자 케이틀린 오코넬. 출판사 제공

세계적 동물학자이자 코끼리 연구자 케이틀린 오코넬. 출판사 제공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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