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 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이 사안이 중대 사안이기는 하지만, 회사와의 근로관계를 단절시킬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징계혐의자 A에 대한 심문절차를 마치고 인사위원장을 포함한 7명의 위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며 토론을 하던 중 한 위원이 이야기했다. A의 성실의무 위반 내용은 최근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된 내용이었고, 회사 측으로부터도 중징계 의결을 요구받은 터라 징계수위를 높여 해임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형성되어가던 차였다.
그 위원은 A가 부정한 거래를 한 것은 아니고, 금전적 이익을 취한 것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존 징계 사례와 비교해 봤을 때도 해임은 과중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놀라웠던 점은 그 위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원회 공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었다는 것이다. 바로 직전까지 해임도 가능하다며 사안의 엄중함에 대해 열띠게 의견을 제시했던 위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다. A는 심문절차에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본인의 딱한 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위원들 마음속에 그 딱한 사정이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한 위원의 합리적인 의견제시와 결합하여 순식간에 모든 위원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사위원회는 A에 대해 정직 3개월을 의결했다.
공공기관 또는 대학교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또는 징계위원회에 외부위원으로 참석하여 징계 심의·의결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외부위원으로서 변호사의 역할은 징계관련 자료를 검토해서 해당 사례에 대한 최근 판례의 경향이나, 징계혐의자가 불복해서 소송으로 갈 경우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 징계절차의 적법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켜야 할 점이 무엇인지 등을 조언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준비하는 편이다.
먼저, 인사(징계)위원회 참석 요청을 받으면, 기관 또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미리 보내준 자료를 읽으면서 징계사유가 존재하는지, 요청받은 징계의 종류가 중징계 혹은 경징계인지 확인하고, 징계의결을 한다면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징계양정)를 미리 생각해놓는다. 징계양정은 '징계기준'이라는 표를 보면서 검토한다.
징계기준은 ①비위의 유형(성실의무 위반, 복종의무 위반, 직장이탈금지 위반, 친절공정의무 위반, 청렴의무 위반,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 ②비위의 정도(중/경) 및 ③과실(고의, 중과실, 경과실) 여부에 따라 징계의 종류를 정하는 기준이다. 기관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예컨대, 직장이탈금지의무를 위반해서 무단결근을 한 경우 비위의 정도가 중하고 경과실이라면 징계의 종류는 '정직-감봉'으로 정해지는 식이다.
이후 위원회에 출석하여 징계혐의자에 대한 심문절차를 거친다. 각 위원들은 자료를 검토하며 궁금했던 점을 징계혐의자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다. 법률전문가가 만든 자료가 아니어서 징계사유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한 경우 어떤 위원은 마치 수사관이 취조하듯이 징계혐의자를 추궁하여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경우도 있고, 위에 언급한 사례처럼 징계혐의자의 딱한 사정을 구구절절 들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도 있다. 한편, 객관적으로 징계사유가 명백히 존재하는데 막무가내로 본인 생각만 우기면서 목소리를 높이다가 나간 경우에는 위원들이 부정적 인상을 받아 이후 징계심의 과정에서 '본인 행위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위원회의 심의 및 의결과정은,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내부위원'과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외부위원'의 자유토론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각 위원의 경험과 경륜이 드러난다. 각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의견을 제시하며 징계사유의 존부를 결정하고 징계양정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집단지성이 발현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징계혐의자 입장에서는 위법·부당한 징계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으므로 불복할 수 있으며, 다음 편에서 불복절차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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