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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어디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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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태원, 연이은 참사를 보면서 '국가는 어디 있었나', '차라리 이런 국가는 없는 게 낫다'고 한다. 반면, 이번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기적적으로 16강에 들었을 때는 '대~한민국'을 가슴 뜨겁게 외치면서 여야 없이 '국가'를 생각하며 하나가 되었다.
이때 말하는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조르주 뷔르도(G. Burdeau)는 국가(Etat)란 '아이디어(idea)의 총합'으로 정의한다. 5,000년 역사 속에서 숨 쉬는 우리들의 머릿속에 공통분모로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이 국가가 아닐까. 즉, 국가란 추상적 개념으로서, 그 자체가 편파적이지도 않고, 분할될 수 없는 '하나'이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대로 끌려가는 순간까지 생각한 것은 이런 의미의 국가였다.
그렇다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다. 정확히는 '정부'가 비판의 대상이다. 국가의 구성요소는 국민, 주권, 영토이다. 주권을 지키는 정치체가 '정부'이고, 구체적으로는 행정수반을 정점으로 하여 관료들로 구성된 행정부 조직이다. 정부란 국가의 의사를 실현시키는 도구에 불과하고 국가 없이는 불가능한 존재이다.
이렇게 개념정의를 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국가 없이, 나 혼자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면, 뷔르도의 정의에 따른 국가는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국민이라면 '국가'를 염두에 두고, 주권을 행사하며 그 책임도 다해야 한다. 공짜로 혜택만 받기 바라는 포퓰리스트적 국민은 국가 존립의 장애이며, 선동적 정치꾼들의 먹잇감일 뿐이다. 유대인들이 영토 없이 세계를 떠돌아도 국가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전쟁 속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그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생각이 좌우할 것이라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국가'와 '정부'라는 개념을 구분해 쓸 것을 제안한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행정학자 케틀(Kettle)이 작은 정부를 주장하면서도 정부가 해야 할 최소 기능으로서 국민들 간에 '가치관을 공유'토록 하는 것을 들었던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정부도 헬조선으로 절규하고, 분노하며, 절망 속에 사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쓰다듬고 국가의 존재를 느끼도록 하는 정책을 심각히 고민할 때이다. 과거 체육청소년부가 있었던 것같이, 이들에게 희망을 줄 '청소년부'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시급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국가를 위해 순국한 영혼을 끝까지 잊지 않도록 하는 국가보훈처도 이런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외국인이 많아지는 다문화사회가 됨에 따라, 외국인도 한국이라는 국가를 받아들이도록 포용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과제가, 신설될 이민청에 있다. 저출산 대책이나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따뜻하고 믿음직한 국가라는 생각이다. 돈으로 아무리 출산지원을 해도 아기를 지켜줄 국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애를 낳지 않는 것 아닌가. 견고한 '국가'가 세워진다면, 국적 취득에 혈통주의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국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생각으로서의 '국가'가 언제까지 존재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미래에도 국가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좋은 정부'를 만드는 데 우리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각종 위험에서 사람들을 사전에 보호하는 안전국가를 만드는 것이 좋은 정부의 최소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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