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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의 잘못된 짝사랑

입력
2023.01.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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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왼쪽)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2017년 3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전경련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창수(왼쪽)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2017년 3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전경련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윤석열 정부 출범을 누구보다 바랐다. 몇 년 동안 상황이 최악이었던 터라 대기업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보수 정권이 등장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1961년 창립 이후 50년 넘게 재계의 맏형 노릇을 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농단에 개입됐다는 의혹에 휩싸인 뒤 회비의 75% 이상을 책임지던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등 '빅 4'를 포함한 회원사 그룹들이 탈퇴하며 조직은 쪼그라들고 해체 얘기까지 나왔다.

애타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전경련은 정권 출범 전부터 '직진'했다. 압권은 3월 30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였다. 여기에는 정부, 국민 사이의 소통 확대에 따른 제도적 신뢰 증가로 국내총생산(GDP)이 1조2,000억~3조3,000억 원 늘어난다는 주장이 담겼다. 게다가 청와대를 활짝 연 뒤 찾아오는 관광객들로부터 1조8,000억 원을 벌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보고서는 엉성한 근거와 꿰다 맞춘 듯한 논리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청와대 관광 수입의 근거는 청계천 개방으로 늘어난 관광객 숫자였다. 용산 집무실의 청사진도 나오기 전에 슬로바키아, 우루과이를 언급하며 경제 성장률까지 끌어올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대한 여론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그랬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대통령실을 대놓고 지원 사격한 것이라는 비아냥도 쏟아졌지만 전경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 정부와 보조를 맞추려는 듯 이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대놓고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이 통하지 않았던 탓일까. 지난해 12월 9일 상징적 '사건'이 벌어졌다. 청와대 상춘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장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장들이 함께 밥 먹는 자리에 전경련 회장은 없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만 빠진 이유를 묻자 대통령실은 경총이 주요 대기업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전경련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다"고 전했다. 초대장을 받지 못한 것도 속상한데 대통령실의 싸늘한 반응에 전경련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결국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임기를 한 달 남기고 물러날 뜻을 밝혔다. 2011년 취임한 지 12년 만이다.

전경련은 다시 태어나겠다며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6년 전에도 전경련은 큰 위기라며 이름까지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고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는 쇄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시 학계는 물론 재계 내부에서조차 진정성이 모자란다며 시큰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나. 짝사랑하다 상대로부터 외면받고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전경련은 기업의 주주이자 직원이자 그 가족인 국민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과거처럼 힘 있는 세력에만 기대려다 지금의 굴욕적 상황에 처한 것 아닌가. 그 해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앞선 쇄신안 발표 때 전경련 스스로 했던 약속만 지키면 된다. "국민께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것에 깊이 사과드린다. 정치적 목적에 관여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박상준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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