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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원자로, 혁신인가 신기루인가

입력
2023.01.17 18:30
수정
2023.01.18 11:33

신재생 싸지는데 굳이 vs 에너지 포트폴리오 다각화

삼성중공업의 해상 원자력 발전설비 부유체(바지선)에 시보그의 100MW급 소형 용융염 원자로 여러 기가 실려 있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삼성중공업 제공

삼성중공업의 해상 원자력 발전설비 부유체(바지선)에 시보그의 100MW급 소형 용융염 원자로 여러 기가 실려 있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삼성중공업 제공

한국 원자력 전문가를 영입한 시보그는 앞서 삼성중공업과도 손을 잡았다. 삼성중공업은 해상 원자력 발전설비 부유체(바지선)의 개념설계를 완료하고 이달 초 미국 인증을 받았다. 덴마크 본사에서 설계한 용융염 원자로를 이 바지선에 실어 동남아시아 등지로 수출한다는 게 시보그의 계획이다. 소형 원자로 여러 기를 바다 위에 띄워놓고 필요한 만큼 전기를 생산해 내륙으로 공급하는 해상 부유식 원전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동남아시아의 에너지 전환에 기여할 수 있을 거란 예상이다.

삼성중 바지선에 실릴 시보그 원자로

시보그가 개발 중인 용융염 원자로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로 꼽힌다.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되는 중대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해서 ‘원자로의 끝판왕’이라고도 불린다. 보통 원자로의 핵연료는 고체다. 이게 깨지거나 녹아 방사성 물질이 새면 중대사고다. 반면 용융염 원자로의 핵연료는 액체다. 고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화합물(용융염)에 핵반응 원료인 우라늄을 섞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핵반응으로 생긴 방사성 기체가 용융염 안에 갇히는데, 여기에 헬륨가스를 주입해 방사성 기체를 붙잡아 따로 처리하면 사고 가능성이 줄어든다.

문제는 용융염 일부 성분이 금속을 부식시킨다는 점이다. 부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용융염 조성을 알아내지 못하면 수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시보그는 개발 완료 시점을 2028년으로 내다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더 오래 걸릴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용융염 원자로를 비롯한 차세대 소형 원자로의 공통점은 혁신 기술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미국 기업 테라파워와 함께 와이오밍주에 짓겠다는 소듐 고속로, 중국이 산둥반도에서 가동을 시작한 고온 가스로 등도 차세대로 분류된다. 이론적으론 안전성을 크게 높일 수 있어 원자력계의 기대가 크지만, 대부분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안 써봤던 기술이라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받기도 까다로울뿐더러 비용도 많이 든다.

작게 만들면 더 안전할까

미국 기업 뉴스케일 파워가 개발 중인 소형 원자로 개념도. 지하에 커다란 수조를 설치해 작은 원자로를 여러 개 담가 두는 구조다. 뉴스케일 파워 홈페이지

미국 기업 뉴스케일 파워가 개발 중인 소형 원자로 개념도. 지하에 커다란 수조를 설치해 작은 원자로를 여러 개 담가 두는 구조다. 뉴스케일 파워 홈페이지

원자력계는 그래서 소형 원자로를 기존 원전과 비슷한 경수로 유형으로 개발하는 게 좀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혁신 기술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하기보다 대형 원전을 축소해놓은 형태부터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미국 기업 뉴스케일 파워가 아이다호주에, 아르헨티나가 포모사주에 건설한다는 소형 원자로 등이 그런 예다. 차세대와 달리 이들은 냉각재로 물을 쓰기 때문에 작동 원리가 기존 원전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규모를 줄이면서 구조를 일부 변형한다. 국내 첫 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도 경수로다. 원자로 주변에도 수많은 기기가 배치되는 대형 원전과 달리 주요 기기를 한 용기 안에 몰아넣은 일체형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의 단면도. 가동에 필요한 모든 기기가 한 용기 안에 들어 있는 일체형으로 설계됐다. 원자력연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의 단면도. 가동에 필요한 모든 기기가 한 용기 안에 들어 있는 일체형으로 설계됐다. 원자력연 제공

소형 경수로는 열밀도(단위 부피당 나오는 열의 양)가 대형 원전의 70~80% 수준이다. 제거해야 할 열이 적기 때문에 비상 전원을 확보하지 않아도 대류 같은 자연현상만으로 냉각이 가능해 그만큼 안전성이 높다고 원자력계는 설명한다. 하지만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핵연료가 더 필요하다. 발전 후 단위 부피당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핵연료 자체의 설계를 사용후핵연료가 덜 나오도록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이를 구현하려면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소형 원자로도 원자력 산업의 근본적 한계인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원전 규모가 작아지면 출력은 줄지만 안전 비용은 결코 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용 낮추는 게 상용화 관건

혁신 기술 없이도 소형 원자로 한 호기를 지으려면 건설비가 적어도 기존 원전의 2배라고 한다. 한두 기로는 경제성을 맞추기 어렵다. 환경단체들이 소형 원자로가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더구나 국제재생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에 추가된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81%가 재생에너지였다. 태양광과 풍력의 평균 발전 비용은 전년보다 13~15% 떨어졌다. 재생에너지 비용이 계속 내려가는데 굳이 더 비싼 원자로를 지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생에너지가 24시간 안정적인 전원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태양광과 풍력은 지역별 편차도 크다. 방인철 울산과학기술원(UNIST)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한계, 화석연료 발전과 대형 원전을 줄이는 추세를 감안하면 에너지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라도 소형 원자로 기술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길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은 “소형 원자로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기후위기와 안보 측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다양한 산업 수요에 대응할 최적의 기술을 찾아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소형 논설위원 겸 과학전문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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