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서로를 돌보는 마음

중요한 건 서로를 돌보는 마음

입력
2023.01.16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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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많은 게 싫어 해돋이 대신 해넘이 부부여행을 갔다. 덕분에 한적한 분위기에서 강릉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왕 놀러온 거 지역에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찾아보자며 시장통에 있는 식당 문을 열었다. 언제 나온 지 알 수 없는 정사각형 텔레비전에 화면 비율이 깨진 뉴스가 흘러나왔고, 위생적이고 깔끔한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밥도 맛있긴 했지만, 맛깔나는 반찬은 따로 있었다. 식당 주인 부부와 손님 부부가 원래 알고 있던 사이였던지 재밌는 수다가 한창이었다.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네 청년들의 연애, 외모, 직업 정보를 모두 꿰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방금 나간 청년 손님의 살을 걱정하는가 하면, 인사성 좋은 근처 젊은 사장님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결혼까지 이어지게 했고, 동네 청년들의 대소사를 모두 챙기고 있었다. 동네 청년들의 이야기는 어느새 자식 자랑으로 옮겨갔다. 식당 주인이 조카가 큰돈을 벌어 용돈 100만 원을 떡하니 주고 갔다는 이야기를 하자, 손님은 딸이 백화점에서 100만 원어치 옷을 사줬다는 이야기로 화답했다. 손자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중간중간 자랑 같아서 어디 가서 말은 안 하지만이라는 추임새가 곁들여졌지만 한 번 시작된 이야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나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노력도 보였다. 악덕한 시부모에 대한 흉을 보면서 어르신들만의 유머를 덧붙였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자 들어가는 게 싫어서 시청도 안 간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눈을 마주쳤고 먹고 있던 밥알이 나올 뻔했다.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하면 안 되고, 처음부터 자주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는 인사성 좋고 어른들에게 잘 하면 잘 산다는 걸로 끝났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으므로 마치 우리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강원도 사투리로 맛깔나게 말씀하신 탓에 즐겁게 들었는데, 우리 부모님들도 비슷한 대화를 친구들과 나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모든 자식들이 남에게 자랑할 만한 용돈을 부모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외모 평가와 결혼 이야기들은 당사자들이 들었다면 모두 기분 나쁜 이야기들이었다. 왠지 웃었던 게 미안해졌고 어서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가게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젊은 청년 둘이 시루떡을 들고 들어왔다. 근처에 가게를 열었다며 인사를 하러 왔다는 거다. 인사성 좋은 젊은 사장의 이야기는 이 식당에서 두고두고 우려져 널리 퍼질 터였다. 음식점 사장님은 작은 접시에 휴지를 깔고 그 위에 먹기 좋게 자른 시루떡을 올린 다음 이쑤시개를 옆에 놓아서 우리 앞에 가져다 줬다. 어르신은 타인을 무례하게 평가하고 타인의 삶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사람이자 타인에게 친절과 사랑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명절을 앞두고 무례한 질문과 잔소리를 할 어른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그럼에도 우리가 명절에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가족을 만나는 이유는 각자의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돌보기 위해서 일거다. 불편한 꼰대 때문에 서로를 돌보는 소중한 시간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시루떡을 들고 문을 두드린 청년과 그 떡을 정성스럽게 나눈 어르신처럼 서로를 돌보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명절이 될 수 있기를 빌어본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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