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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우체국과 집배원들 도움으로 설 대목에 울릉도까지 제주귤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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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둔 16일 제주시 제주우편집중국은 바다 냄새가 물씬 났다. 이곳은 고등어, 감귤, 고사리 등 제주도 특산물을 육지로 올려 보내는 집합소다. 지역별로 보내질 택배 분류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제주귤이 가득 담긴 상자는 사람 키를 훌쩍 넘긴 높이로 꼬리를 물고 쌓여 있었다.
현지호 제주우편집중국장은 "평소에는 최대 2만 통을 다루지만 설 명절엔 3만 통을 넘긴다"며 "단기 아르바이트생도 뽑아 인력을 평소보다 15% 늘렸다"고 설명했다. 25톤짜리 대형 트럭에 실리는 제주귤을 가리키며 "산골마을이든 섬마을이든 민간 택배 회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건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우체국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온라인쇼핑몰인 우체국쇼핑을 운영하며 판로 확보가 어려운 지방 상인들에게 전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고 있다. 우체국쇼핑이 받는 거래 수수료는 7% 수준으로 민간 쇼핑몰의 절반 정도다. 우체국쇼핑을 통해 들어온 주문은 우편집중국에 1차로 모인 뒤 집배원들을 통해 곳곳으로 뿌려진다.
우체국쇼핑 입점업체 재일영농조합법인은 귤 농사를 짓는 마을주민들과 외지에서 합류한 젊은 청년들이 뜻을 모아 운영하는 업체다. 감귤, 한라봉, 레드향 등 제주 대표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조합 작업장에는 한 상자에 약 300개 귤이 들어가는 작업상자 수백 개가 쌓여있었고, 20여 명의 작업자들이 귤을 포장하고 있었다.
이곳이 우체국쇼핑과 인연을 맺은 과정은 독특하다. 우체국쇼핑 직원들이 전국을 돌며 성장성 높은 지역업체를 뽑아 입점까지 이끈 사례다. 조합이 우체국쇼핑을 만나기 전 주요 판매처는 도매시장이었다. 김종근 재일영농조합 대표는 "도매시장에 물건을 팔 때는 가격 변동이 너무 커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제주 감귤주스 원액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다 조합에 합류한 박선우 부장이 지역 유망업체를 발굴하러 제주까지 내려온 우체국쇼핑 관계자를 만나면서다. 우체국쇼핑의 낮은 수수료와 판로 지원 설명을 들은 박 부장은 온라인으로 판매처를 확대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농촌 지역 고령층이 대부분이었던 조합원들은 온라인 쇼핑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부족해 우체국쇼핑 입점을 망설였지만 "우체국이 도와준다"는 말을 믿고 마음을 열었다. 수십 년 동안 우편 업무를 하며 주변에서 봐온 우체국에 대한 신뢰가 높았던 것. 결과는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0년 우체국쇼핑을 통해 얻은 매출액은 5억3,0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7억4,500만 원까지 세 배 이상 뛰었다.
우체국과 손잡으며 제품 경쟁력도 높아졌다. 민간 쇼핑몰은 제품을 입점시키고도 한번 상품을 구성하면 다시 바꾸기가 어려웠다. 제품 구성을 바꾸는데 따르는 비용 문제가 가장 컸다. 반면 우체국쇼핑은 판매자의 상품 구성 의견을 빠르게 받아줬다. 예를 들어 감귤과 한라봉, 레드향을 적절히 배합하는 상품을 출시하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을 강조한 우체국쇼핑이 즉각 새로운 구성 출시를 지원했다.
무엇보다 우체국을 통하면 전국 각지로 상품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김 대표는 "울릉도 같은 경우는 민간 쇼핑몰이나 택배사를 이용하면 '배송 불가지역'으로 뜨곤 한다"면서 "우체국은 집배원들이 섬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배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는 울릉도에서 정기적으로 배송 주문이 들어온다"며 "아무래도 '우체국을 통해 귤을 배달해주는 업체'라고 소문이 난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외딴 곳까지 뛰어다니는 집배원들도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즐겁다고 한다. 강원 홍천군 창촌우체국 양영모 집배원은 "우체국은 공익성이 중요해 일반 택배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골마을이나 섬마을까지 물건을 배송한다"며 "설 명절을 맞아 증가하는 지역특산품 등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배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간오지까지 배송은 물론 쉽지 않다"면서도 "멀리 떨어진 가족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얼굴을 보면 덩달아 힘이 난다"고 말했다.
옥돔, 고등어, 해산물 라면 등을 판매하는 '올레마켓'은 전체 매출액의 15%를 우체국쇼핑을 통해 얻고 있다. 양동국 올레마켓 대표는 제주도 동문시장에서 16년 동안 수산물 유통사업을 하다 올레마켓을 창업했다. 평생 유통업에 종사하다 처음 특산물 생산업에 뛰어든 그는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영세한 업체 사정상 홍보에 큰돈을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민간 쇼핑몰에 제품을 입점시키기도 했지만, 수많은 상품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도움을 준 것이 우체국쇼핑이었다. 우체국쇼핑은 올레마켓과 대왕삼치, 갈치, 고등어 같은 자체 제작(PB) 제품을 만들었고 쇼핑몰 홈페이지를 통해 제품 알리기에도 나섰다.
그 결과 2020년 창업 이후 올레마켓이 우체국쇼핑을 통해 올리는 매출액이 매년 두 배가량 증가했다. 양 대표는 "우체국쇼핑에서 아낀 돈으로 조림소스를 추가로 개발하거나 공장 시설을 자동화하는 데 투자했다"고 전했다. 이날 방문한 올레마켓 사무실에는 새로 개발한 신제품 '문딱 라면'이 전시돼 있었고, 작업장에는 컨베이어벨트 같은 현대식 작업대가 마련돼 있었다.
우체국은 소상공인과 상생 방안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진행 중인 지역 특산물과 제철 식품 판매 지원 정책 외에도 다양한 협업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는 포부다. 손승현 우정사업본부장은 "우체국쇼핑은 대한민국 대표 공공 쇼핑몰로서 37년의 운영 노하우가 있다"며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업해 지역 중소상공인의 판로를 넓히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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