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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일을 너무 못해"…업무평가 탈 쓴 뒷담화, 직장 내 괴롭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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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지난해 취업에 성공한 20대 직장인 A씨. 그는 첫 사회 생활을 하면서 업무와 조직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입사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유독 냉정하게 자신을 대했던 한 상급자가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놓고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들었다. 일상 생활 태도부터 컴퓨터 활용 능력 같은 업무 능력까지, "막내가 일을 못한다"며 늘어놓는 뒷담화 범위도 무척 넓었다.
A씨는 "물론 업무에 미숙했던 것은 내 잘못"이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한 건가 싶었고 첫 회사 생활을 망친 것 같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는 상급자가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 채 속앓이만 했다.
A씨는 "회사 분위기가 '왜 내 욕을 하고 다니냐'며 따지기 어려웠다"면서 "문제를 키우면 오히려 나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뒷담화 내용을 알까봐 두려웠다"고 떠올렸다. 이 문제로 두통 증세까지 겪었던 A씨는 몇 달 뒤 자신을 욕하고 다녔던 상급자가 이직한다며 회사를 관두고 나서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직장에서 뒷담화로 고민하는 것은 A씨만의 일이 아니다. 직장갑질119가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받은 내용을 분석해보니, 전체 신고내역 1,091건 중 뒷담화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모욕·명예훼손은 405건(유형 중복포함)으로 폭행·폭언 568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같은 기간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체 1만7,342건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례 중 험담·따돌림은 2,000건으로, 폭언(6,199건)과 부당 인사조치(2,695건) 뒤를 이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뒷담화 대부분이 '업무평가'의 탈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직장생활 5년 차인 30대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B씨는 우연치 않게 자신의 팀장이 회사 사람들에게 B씨 험담을 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팀장은 "B는 항상 딱 시키는 일만 한다", "팀 플레이가 어렵다"며 마치 B씨가 업무상 큰 골칫거리인 듯 말하고 있었다.
주변 이곳저곳 물어보니 팀장으로부터 B씨에 대한 비슷한 업무 평가를 전해들은 회사 사람들이 여럿 됐다. B씨는 억울했다. 업무 시간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에도 빠듯하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자잘한 일들을 자신이 한 적도 많았다.
고민 끝에 팀장과 대화를 시도한 B씨는 '오히려 내가 B씨 때문에 힘들었고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나눈 것뿐'이라는 답변을 받고 말문이 막혔다. 그는 "적반하장이었지만 업무 능력 피드백이라고 말하니 할 말이 없더라"면서 "주관적 업무 평가로 한 사람의 직장 생활을 깎아내리면 안 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팀장과의 관계 때문에 더 따지고 들지 않았지만 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모든 일에 눈치가 보인다"고 토로했다.
최근 카카오톡 등 단체 대화방은 뒷담화가 이뤄지는 일상적 공간이 됐다. 여러 사람들이 손쉽게 모인다는 점, 대부분 친한 사람들이 단체방을 만들고 대면 만남보다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방의 인격까지 침해하는 뒷담화가 보다 쉽게 이뤄진다.
직장인 C씨도 '카톡 단체방 뒷담화'에 고통을 겪었다. 그가 카톡 단체방에서 자신이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우연히 함께 차를 마시던 옆 부서 입사 동기가 불쑥 꺼낸 말 때문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입사 동기는 C씨가 전날 출근시간에 5분가량 늦은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경위를 캐 물으면서 단체 대화방의 존재를 인지했다.
C씨의 요구로 보게 된 해당 단체 대화방은 C씨의 부서 선임자와 회사 사람들 5, 6명이 들어 있었는데 "OO(C씨)이 지각, 늦잠잔 듯ㅋㅋ" 같은 C씨의 언행이 자주 공유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단체 대화방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따져 물었고,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도 잘 모르는 회사 사람까지 단체 대화방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C씨는 "평소에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들이 나를 겪어보지도 않고 선입견을 갖게 된 것 같다"면서 "회사에서 나를 평가할 때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마치 왕따를 당한 것 같은 고립감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많은 직장인들이 사내 뒷담화로 고통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뒷담화 형태와 정도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①직장에서 지위와 관계에 우위가 있는 사람이 ②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뒷담화를 하고 이로 인해 ③다른 동료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일할 환경이 나빠지면 괴롭힘이 성립한다. 특히 공적인 부분이 아닌 한 사람의 개인을 향한 지나친 뒷담화는 괴롭힘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뒷담화가 직장 내 괴롭힘을 입증하기 가장 어려운 유형이라고 입을 모았다. C씨처럼 단체 대화방에 뒷담화 내용이 남아있다면 그나마 괴롭힘 입증이 쉽다. 하지만 A씨나 B씨처럼 누군가에게 뒷담화 내용을 전해듣거나 우연히 듣게 된 말뿐일 경우 상대방이 부인하면 괴롭힘 행위를 따져 묻기가 어렵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는 "지나친 수준의 뒷담화를 한 사람이 직무상 우위에 있는지를 따져본 뒤 뒷담화 내용이 업무상 적절한 범위를 벗어났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뒷담화를 하며 쓴 말이나 소문을 퍼트리는 방식, 어떤 장소에서 어떤 형태로 얘기가 오갔는지 등 꼼꼼하게 평가해야 할 영역"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팀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팀원에게 다른 팀원의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를 적정한 수위에서 내놓는 것은 업무 평가 범위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팀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옆 부서 사람에게 지나친 용어와 표현으로 팀원의 업무 능력을 비난한다면 '적정한 업무 범위'를 넘어선 사례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역시 "뒷담화로 고통받고 상담을 원하는 직장인들이 정말 많다"면서도 "뒷담화는 은따(은근한 따돌림)와 더불어 괴롭힘 입증이 가장 어려운 유형"이라고 말했다. 박 운영위원은 "뒷담화로 사내 입지가 위축되거나 팀이나 부서를 옮길 때 불이익을 받게 될까 걱정하는 사례가 대다수"라며 "자신의 뒷담화 사실을 전해 들은 것으로는 괴롭힘 입증이 쉽지 않고 녹취나 손으로 적은 구체적 정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박 운영위원은 뒷담화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으로 '조직문화 개선'을 제시했다. 그는 "뒷담화 대부분이 업무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며 "특정인에 대한 업무 평가는 본인 앞에서 공식적으로만 진행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나친 뒷담화 문화가 되풀이되면 직장 내 생산성이나 조직 융합에도 좋을 리 없다"며 "사업자도 이 부분을 잘 알고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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