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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도에서 비례투표 몰빵은 미친 짓"... 여전히 드리운 꼼수 위성정당 그림자

입력
2023.01.20 04:30
수정
2023.01.20 09:5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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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위성정당 해결해야" 한목소리
與 '폐지' vs 野 '보완'... 이견 여전
"개선 못하면 비례정당 나올 수밖에" 우려

2020년 2월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미래한국당은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다. 연합뉴스

2020년 2월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미래한국당은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다. 연합뉴스


"우리 주장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다. 폐지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다면, 위성정당 창당 움직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국민의힘 재선의원)
"위성정당 방지법이 제출돼 있어도 위성정당을 만들고자 한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만약 국민의힘이 창당을 강행한다면, 우리도 (창당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더불어민주당 재선의원)

정치권이 거대정당의 위성정당 꼼수로 무력화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손질하기 위해 논의에 돌입했다. 문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면서 위성정당만 '핀셋' 저지하는 것이 법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위성정당 난립을 방지하는 근본적인 선거제 개혁을 하거나, 여야가 22대 총선에선 반칙과 변칙을 구사하지 않겠다는 페어플레이 선언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승자독식과 무한정쟁의 정치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여의도 정치권의 이면에는 상대가 반칙을 구사하면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게임의 논리'가 웅크리고 있다. 극심한 정치 불신을 가져온 21대 총선의 꼼수 위성정당 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셈이다.

열린민주당 재창당... "민주당 정당투표, 신당이 받아와야"

이 같은 제도의 틈새를 파고드는 움직임은 가시화하고 있다.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열린민주당(이하 신열린당)은 지난달 23일 선관위 정당 등록 절차를 마쳤다. 태생 과정을 살펴보면 신열린당은 민주당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했던 당시 제1야당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미래한국당)을 만들자,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 창당으로 맞불을 놓았다. 이 무렵 민주당의 '제2 위성정당'을 자처하며 창당한 게 열린민주당(이하 구열린당)이다. 당시 구열린당은 친조국 진영의 표가 몰리면서 최강욱·김진애·강민정 의원을 배출했다. 이후 김진애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으면서 비례 4번이었던 김의겸 의원이 자리를 승계했다. 이후 3석의 구열린당은 지난해 1월 민주당과 합당했다.

신열린당은 구열린당에서 민주당과 합당을 반대했던 진영이 결성한 신당이다. 현역 의원은 없지만, 구열린당 주축 멤버였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고문 역할을 했고, 손혜원 전 의원은 기존 정당 로고 사용을 허락했다. 중앙당사도 구열린당 사무실을 그대로 이용한다. 신열린당은 다당제 정치개혁을 추구하고 거대 양당의 대안정당을 표방한다고 밝히고 있다. 진보 유튜버인 김상균 신열린당 대표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상황에 따라 민주당과 연대할 수 있지만, 합당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며 "시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정당"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열린당이 구사하는 선거 전략은 민주당의 '제2 위성정당'을 자처했던 구열린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 대표는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바뀌지 않고 22대 총선에서 그대로 적용될 것이란 전제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150석 얻는다 치자. 현재 정당 지지율 46%를 적용할 경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민주당은 (비례의석) 1석을 가져간다. 하지만 민주당으로 가는 정당 지지율 46%에서 20%만 신당이 받아오면, 신당은 15석을 얻는다. 지금 비례 제도에선 민주당에 몰빵하면 미친 사람들이다."

민주당은 일정 이상 지역구 의석을 얻어 비례의석을 많이 얻기 어려우니, 비례전용 정당에 정당득표를 나눠줘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또 다른 영상에선 "우리가 설득되고, 명분 있는 모든 사항에 대해서 민주당 2중대를 하겠다"며 "열린민주당에 당원을 좀 꿔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열린민주당 손혜원(오른쪽), 정봉주 최고위원이 2020년 3월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열린민주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토크쇼를 하고 있다. 뉴시스

열린민주당 손혜원(오른쪽), 정봉주 최고위원이 2020년 3월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열린민주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토크쇼를 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의 비례전용 정당을 자처하고 있는 신열린당에 대해 민주당은 당 차원의 움직임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구열린당 출신으로 민주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의겸 의원은 "민주당과의 합당에 찬성하지 않는 분들을 중심으로 움직임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지, 저희와 교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도 "정치적 의미를 둘 필요가 없는 해프닝"이라고 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선거제 개혁이 불발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한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당시 외곽에서 자발적으로 창당한 구열린당을 겨냥해 "무단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참칭하지 말라"(이해찬 전 대표)며 거리를 뒀지만, 지난 대선을 앞두고 결국 합당했다. 합당 전에도 언론중재법 등 쟁점 법안 처리 과정에서 구열린당은 '범여권'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민주당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국민의힘 "위성정당 막기 쉽지 않다"... 여지 남겨

국민의힘 주변에선 위성정당 창당 시도나 구체적 움직임이 드러난 것은 아직 없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위성정당 창당에 더 적극적으로 여지를 두는 편이라는 게 문제다. 2019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정안이 자신들을 배제한 채 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되자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위성정당 창당에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논의 과정에서 위성정당 창당을 경고했던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전에 위성정당 창당을 공식화했고, 법안 통과 40일 만에 창당을 마무리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는 셈이다.

정개특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위성정당에 대해선 여야 모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니까 진전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만약 해결이 안 되면 위성정당을 막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개특위 위원이자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 운영위원인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조차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위성정당 창당을) 안 할 것"이라면서도 "지난번처럼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합의해서 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게 된다면"이라고 전제를 붙일 정도다.

2019년 12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개정안 저지를 위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 당원들이 사흘째 국회 앞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9년 12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개정안 저지를 위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 당원들이 사흘째 국회 앞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꼼수'로 등장한 위성정당... 여야 "개선 필요 만장일치"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 간담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 간담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간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비례의석 배분을 지역구 의석과 연동하는 제도다. 정당 득표율에 비해 과도하게 지역구 의석을 확보한 정당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례의석이, 득표율보다 못한 지역구 의석을 얻은 정당에는 많은 비례의석이 부여된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선 거대 양당이 창당한 위성정당이 '정당 득표율은 30%가 넘는데 지역구 의석은 0석인 당'으로 둔갑해 비례의석을 4~11석씩 더 가져갔다.

22대 총선에선 이 같은 '위성정당 부조리극'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에는 여야 모두 찬성 입장이다. 정개특위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지난 11일 소위 3차 회의를 마친 뒤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거의 만장일치로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를, 민주당은 보완을 내세우고 있어 "합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특히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 일부 손질만 해서는 위성정당 창당을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헌법은 정당 설립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어, '위성정당'이라고 자의적으로 낙인찍어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 위성정당이든, 자매정당이든, 기존 정당 소속 사람들이 새로 당을 만들든, 당은 여러 개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도 "위성정당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연동형 비례제를 보완·개선해서 유지해봐야 또 무력화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힘들어도 비례성 강화 원칙을 지키면서도 위성정당 창당을 방지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행 선거법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리 등과 맞물려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며 "권역별 대표성을 높이고,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개방형 비례대표 명부를 활용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제도적인 개선이 어렵다면 정치적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며 "여야가 신사협정을 맺거나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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