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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쯤 늦어도 괜찮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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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새해 학교 첫날부터 늦잠을 잔 고등학생 아이를 차로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초등학생들 스쿨버스 뒤에 딱 걸렸다. 스쿨버스 승하차 시에는 추월이 절대 금지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을 때까지 꼼짝 못 하고 기다려야 한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는가 싶었는데 버스 비상등이 다시 켜진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다보니, 건너편 길 저 아래에서 한 아빠가 딸을 데리고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온다. 아이가 아빠와 포옹을 하고 차에 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 버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출발한다. 나와 내 뒤에 서 있던 차들은 그제서야 기어를 바꾸고 가던 길을 다시 간다.
연구실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나는 보통 도보나 버스로 출근하는데, 집 앞에서 캠퍼스까지 가는 버스에서 자주 보는 승객 중 휠체어를 타는 분이 있다. 이분이 탈 때 기사는 우선 버스 앞부분을 낮추고 앞문과 보도를 잇는 다리를 내린 뒤 운전석에서 나와 버스 앞쪽에 있는 장애인석 의자를 올려 휠체어 들어갈 자리를 만든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버스 뒤쪽으로 이동해 있다. 휠체어에 탄 분이 승차하면 기사는 휠체어 방향을 자리에 맞게 돌리고 움직이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한 뒤 운전석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승객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살핀 뒤 천천히 출발한다. 보통 3분, 길어도 5분이 안 걸리는 이 과정은 승객과 기사 모두 능숙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잘 안무 된 발레처럼 진행된다. 나도 다른 승객들과 같이 예의 바른 무관심의 태도로 조용히 버스 뒤쪽으로 이동해 출발을 기다린다.
성격이 많이 급한 편인 나는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시계를 힐끔 보고 머릿속으로 다음에는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앞 편 버스를 타야겠다는 등의 계산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곳 생활이 제법 오래된 지금 이런 경험은 별다른 감정이나 반응을 동반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최근 한국 신문에서 본 서울시장의 지하철 1분 지연 발언과 관련된 기사가 아니었다면 특별히 떠올릴 일도, 이렇게 칼럼에 쓸 일도 없는 당연한 일상의 풍경이다.
서울지하철이 1분만 늦어도 큰일이라는 건 사실일 수 있다. 한 차량이 지연되면 다음 차량들에도 연쇄효과가 있을 것이고 그 많은 승객들 중에는 연결 차편을 놓쳐 중요한 회의나 시험에 늦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1분만 늦어도 큰일이라는 건 서울지하철, 나아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1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효율적으로 설계된 기계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효율적인 기계에서 사람들 역시 1분의 오차도 없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살아간다.
이 기계의 속도에 맞춰진 삶에서 주변에 있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아니 다른 사람의 곤란한 상황을 인지하는 것조차 사치가 된다는 건 50년 전 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입증한 바 있다. 민첩하게 열차에 오를 수 없는 사람은 기계의 작동을 방해하는 모래알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이 무섭도록 효율적인 기계 속에서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시민적 연대와 관용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렇게 효율적인 기계는 작은 위기에도 쉽게 멈춰버리는 취약한 시스템이다. 1분쯤 늦어도 큰일 나지 않는 서울을 디자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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