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서 "춤 좀 춰봐", "끼 좀 있겠네" 성희롱한 신협

입력
2023.01.12 07:06
수정
2023.01.12 10:42
구독

인권위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
면접위원들 '긴장 풀라고 한 것뿐' 변명
"이력서에 없어 체중 물었다" 주장도

국가인권위원회가 11일 신협 이사장에게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신협은 최근 신규직원 면접장에서 응시자의 외모를 평가하는가 하면 춤과 노래를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사진은 일반적 면접장을 재현한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국가인권위원회가 11일 신협 이사장에게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신협은 최근 신규직원 면접장에서 응시자의 외모를 평가하는가 하면 춤과 노래를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사진은 일반적 면접장을 재현한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키가 몇인지."

"○○과라서 예쁘네."

"○○과면 끼 좀 있겠네."

"춤 좀 춰봐."

성희롱이 난무한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 채용 면접이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팔을 걷고 나섰지만, 진상 조사 과정에서까지 면접위원들은 '자신감을 엿보기 위한 것', '긴장을 풀어주려 한 것뿐'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지난 1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앞서 신협 채용 면접 과정에서 외모 평가와 춤 · 노래 요구가 있었다는 진정 사건과 관련해 "성차별적 문화 혹은 관행에서 비롯된 행위"라며 신협 측에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이뤄진 한 지역 신협 신규직원 모집 최종면접에서 면접위원들은 한 여성 응시자에게 "키가 몇인지", "○○과라서 예쁘네" 등 직무와 무관한 외모 평가 발언을 쏟아냈다.

노래와 춤 강요까지 이어졌다. 해당 응시자가 같은 달 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면접장에서는 사전 동의 없이 면접 중인 모습이 촬영됐으며, 면접위원들은 "○○과면 끼 좀 있겠네", "춤 좀 춰봐"라며 노래와 춤을 강요했다. 응시자가 에둘러 거절했지만, 요구는 거듭됐다.

하지만 면접위원들은 인권위가 조사에 나선 상황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반응을 내놨다. 인권위에 따르면, 면접에 참여한 이사장, 상임이사 등은 '긴장을 풀어주는 차원에서 "이쁘시구만"이라고 말한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또 "이력서에 키와 몸무게가 적혀 있지 않아 물어보았지만 이런 질문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알게 되어 반성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은 노래와 춤이 직무상 필요한 질문이었다는 주장도 이어갔다. 면접위원들은 인권위 조사에서 "노래와 춤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인의 자신감을 엿보기 위해 노래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서 율동도 곁들이면 좋겠다고 한 것", "업무상 조합원들과 친화력이 중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춤과 노래 등을 시연해 보일 것을 주문했다" 등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 같은 답변이 일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신협 이사장에게는 전 직원 대상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고, 신협중앙회장에게는 각 지역본부 및 단위에 이 사건 사례를 공유하고 채용 관련 지침이나 매뉴얼을 제공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면접대상자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노래와 춤을 시연해 보도록 하는 것은 당혹감과 모멸감을 느낄 행위"라고 단언했다. 특히 "위계관계를 고려할 때 선뜻 문제제기를 하기가 어렵고, (응시자는) 요구를 거절할 경우 불이익이 돌아올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에둘러 거절의 뜻을 밝혔는데도 이를 거듭 요구하는 등의 행위는 강요와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고, 성적 불쾌감과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황당행위가 성차별적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인권위는 "직무에 대한 질문보다 외모와 노래·춤 등과 관련한 질문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 건 여성에게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기대하고 부여하는 성차별적 문화 혹은 관행과 인식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질타했다.

남녀고용평등법 7조는 노동자를 모집·채용할 때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조건, 그 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인권위법도 성별을 이유로 고용에서 특정인을 배제하거나 구별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고 못 박는다.

김혜영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