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게임이 세상을 바꾼다"… ESG 게임 만드는 1세대 게임개발자들

입력
2023.01.11 04:30
수정
2023.01.11 15: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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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주 머스트게임즈·김수진 몬테넘 대표
SKC와 합작사 설립해 친환경 게임 개발


머스트게임즈와 몬테넘은 소위 '착한 게임'을 개발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이다. 착한 게임이란 공격적이고 파괴적 게임과 달리 쓰레기 분리 수거, 나무 심기, 멸종위기 동물 보호 등 환경 문제를 다뤄 살기 좋은 세상에 이바지하는 게임이다. 이를 통해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백해무익한 중독성 놀이라는 통념을 뒤집는다.

사실 많은 돈을 벌려면 공격적 내용의 게임이 더 유리하다. 그런데 이들은 왜 착한 게임을 개발할까. 여기에 스타트업으로서 남모를 고충이 숨어 있다. 이들의 고충과 선택은 비슷한 처지의 스타트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백주(53) 머스트게임즈 대표와 김수진(43) 몬테넘 대표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이유를 들어 봤다.

환경보호 등 착한 게임을 개발하는 강백주(오른쪽) 머스트게임즈 대표와 김수진 몬테넘 대표가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게임의 방향성을 담은 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환경보호 등 착한 게임을 개발하는 강백주(오른쪽) 머스트게임즈 대표와 김수진 몬테넘 대표가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게임의 방향성을 담은 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엔씨소프트 개발실장과 기자 출신이 손잡다

머스트게임즈와 몬테넘은 한 몸이나 다름없는 한 지붕 두 가족 성격의 스타트업이다. 머스트게임즈에서 사업을 위해 SKC와 손잡고 합작 설립한 회사가 몬테넘이다. 그래서 몬테넘의 김 대표는 머스트게임즈 사업실장을 겸하고 있다.

특이한 회사 형태만큼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이력이다. 강 대표는 엔씨소프트에서 온라인 게임 '리니지' 등을 개발하며 잔뼈가 굵은 1세대 게임 개발자이며, 김 대표는 언론사 기자 출신이다.

모 대학 통계학과를 중퇴한 강 대표는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좋아해 고교 선배였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소개로 한글과컴퓨터(한컴)에서 일했다. "당시 김택진 대표도 한컴에서 일했죠. 한컴이 전국에 인터넷 회선을 설치하는 일을 했어요. 이 일을 돕다가 김택진 대표가 독립해 엔씨소프트를 창업한 뒤 이직 제의를 받고 옮겼죠."

그는 엔씨소프트 시절 게임개발실장을 맡아 리니지 등 주요 게임을 개발하다가 2016년 퇴사 후 이듬해 머스트게임즈를 창업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내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김수진 대표는 보도전문 케이블방송 YTN에서 15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그는 원래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가 LG CNS에서 근무한 1세대 프로그래머였어요. 남편도 인공지능(AI) 강의를 하는 IT 전문가죠."

그는 2017년 YTN의 자기 개발을 위한 휴직 제도를 이용하던 중 평소 취재원으로 알고 지낸 강 대표에게 뉴스와 게임 접목 방법 등을 묻다가 공동 창업자 자격으로 머스트게임즈에 합류했다. "같은 콘텐츠인데 뉴스와 달리 게임이 돈 많이 버는 이유가 궁금했죠. 게임업계에서 배운 것들이 나중에 언론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잘난 척하다가 실패”

원대한 꿈과 달리 처음 내놓은 게임은 실패했다. "모의전략게임 '로그 유니버스'를 2017년 내놓았는데 흥행이 되지 않았어요. 게임개발도구 '언리얼' 엔진을 만든 에픽게임스에서 주는 상까지 받았는데 안 됐죠.”

그해 여러 게임이 쏟아져 나오며 경쟁이 치열했다. 당연히 돈을 쏟아붓는 마케팅 싸움도 치열했다. "수많은 게임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광고비로 하루 10억 원씩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죠."

강 대표는 '잘난 척'을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있어 보이는 거창한 게임을 좋아해요. 처음 만든 게임은 스타트업이 운영하기에 규모가 너무 컸어요.”

결국 게임을 유지할 수 없어 지난해 서비스를 종료했다. "자식 같은 게임이어서 아픔이 컸죠."

두 번째 출시작은 네이버 웹툰 원작의 모바일 게임 '가우스 전자'다. 같은 조각 3개를 맞춰 사라지게 만드는 퍼즐게임이다. 이 게임 역시 비용 부족으로 광고 마케팅을 하지 못해 돈을 벌지 못했다.

그러나 수확은 있었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은 작은 게임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현실을 배웠다. "큰 게임업체는 돈도 많고 개발, 마케팅 등 분업이 확실한데 스타트업은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용량이 작고 유지하기 편한 작은 게임을 개발해야죠."

강백주 머스트게임즈 대표가 나무 심기를 소재로 다룬 친환경 게임 플랜트 월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강백주 머스트게임즈 대표가 나무 심기를 소재로 다룬 친환경 게임 플랜트 월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실패에서 배운 두 가지

두 번의 게임 실패로 사업 방향이 바뀌었다. "두 번의 실패는 자금, 개발력과 마케팅 능력 등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했어요. 그래서 사업 방향을 틀었죠. 외부 주문을 받아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주면서 기본 운영비를 벌고 나중에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로 했죠."

그때 강 대표가 발견한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들의 사내 교육용 게임 시장이다. "의외로 많은 기업들이 사업을 알리거나 사내 교육을 위한 게임을 원해요."

또 다른 하나는 게임의 사회적 요소다. 이를 위해 김 대표가 제안한 것이 환경 게임이다. "모바일 간편 게임을 많이 즐기는 여성들은 환경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플랜트 월드'라는 탄소 감축을 위해 나무를 심는 내용의 모바일 게임을 만들었는데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구글에서 제작비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죠. 그때 이 분야가 틈새 시장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게이미피케이션으로 방향 전환

두 가지를 깨닫고 게이미피케이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게이미피케이션이란 사업 등 여러 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게임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기업들이 게임을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서 사업 방향이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ESG)를 생각하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플랜트 월드는 게이미피케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게임은 실제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어지며 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산림청이 주도한 국제기구 아시아삼림협력기구(아포코, AFoCO)에서 플랜트 게임과 사업을 함께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게임 이용자들에게 아이템을 팔면 수익의 상당 부분을 아포코에 기부해 해외에서 나무를 심어요."

멸종 위기종 장미목 100그루를 캄보디아에 심은 것은 게임 덕분이다. "그루당 2억 원인 고가의 장미목은 중국에서 붉은색을 행운의 상징으로 생각해 대량으로 베어가며 멸종 위기종이 됐죠."

게이머들의 호승심도 나무 심기에 기여했다. "지기 싫어하는 중국과 러시아 게이머들이 플랜트 월드에 들어와 아이템을 대량 구매해 나무를 미친 듯 심고 나갔어요. 게이머들도 환경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죠."

김수진 몬테넘 대표가 3월 이후 나올 예정인 멸종위기동물을 보호하는 내용의 NFT 게임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김수진 몬테넘 대표가 3월 이후 나올 예정인 멸종위기동물을 보호하는 내용의 NFT 게임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SKC와 합작사 설립

플랜트 월드의 성공은 또 다른 ESG 게임 개발로 이어졌다. 2020년 SKC에서 쓰레기 분리배출 게임을 만들자며 합작사 설립을 제안했다. "SKC는 ESG 활동에 게임을 활용하기를 원했어요. 머스트게임즈 81%, SKC 19% 비율로 합작사를 만들었죠."

다만 게임 개발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 지정은 받지 않았다. "조건이 까다로운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으면 돈이 많이 드는 게임 개발을 위해 투자 등을 받기 힘들어요. 제도적 한계죠."

그렇게 SKC와 손잡고 몬테넘을 설립해 지난해 4월 내놓은 게임이 '마이 그린 플레이스'다. 환경부 장관상을 받은 이 게임은 각종 제품 포장에 붙어 있는 바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13가지 유형의 분리 배출 방법을 알려준다. 이를 확인할 때마다 게임에서 땅이나 아이템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받는다. "바코드를 찍어 복잡했던 분리 배출 방법을 쉽게 배우며 보상을 얻는 게임이죠. 환경 등급이 높은 쓰레기는 포인트를 많이 줘요. 그렇게 게임 속에서 쓰레기를 줄여 각자 아름다운 세상을 꾸미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죠."

1만5,000건의 내려받기 횟수를 기록한 마이 그린 플레이스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좋아했다. "게임을 교육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학교와 부모들이 좋아했죠. 분리배출 교재로 이 게임을 쓰는 학교들이 있어요."

SK그룹의 반응도 뜨거웠다. 지난해 말 SK 계열사 사장들이 모인 SK그룹의 테크서밋에서 이 게임이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강백주(오른쪽) 머스트게임즈 대표와 김수진 몬테넘 대표는 "게임의 중독성을 긍정적 방향으로 활용하면 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강백주(오른쪽) 머스트게임즈 대표와 김수진 몬테넘 대표는 "게임의 중독성을 긍정적 방향으로 활용하면 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게임, 중독성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좋은 교육도구 돼”

ESG 게임의 성공 덕분에 머스트게임즈는 지난해 1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형 게임업체들이 보면 작은 액수지만 강 대표에게는 비약적 발전이다. "지난해 매출 성장률이 1,000% 넘어요. 전년까지 매출이 없었거든요."

매출 발생 전까지 투자로 버텼다. "비상교육,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35억 원을 투자받았어요. 추가 투자는 족쇄가 될 수 있어 딱 버틸 만큼만 받았죠."

다행이 강 대표에게 ESG 게임 개발을 위한 KT, 비상교육 등 기업들의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 "KT에서 플랜트 월드를 보고 직원 대상의 윤리 경영 교육을 위한 게임 개발을 제안했어요. 전략적 투자자인 비상교육도 영어교육 게임을 만들어 줬더니 아주 좋아했죠. 게임은 효과가 확실해 교육하기 좋은 도구죠."

이런 추세에 맞춰 멸종위기동물 보호게임도 개발 중이다. "희귀 멸종위기동물 보호게임을 3월 이후 내놓을 예정입니다. 게임에서 점수를 따면 멸종위기 동물이 들어있는 대체불가토큰(NFT)을 받는 게임이죠."

김 대표도 몬테넘을 통해 ESG 콘텐츠를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SDG)과 관련 있는 주제를 게임이나 가상공간인 메타버스 콘텐츠로 만드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끝으로 게임산업 종사자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질문을 던졌다. 일각에서 게임을 사회악인 마약에 비유하며 중독성을 문제로 지적한다. 강 대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게임의 중독성이 문제라면 더 심각한 술, 담배는 왜 그냥 두나요. 게임업계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무조건 게임을 해로운 것으로 치부하는 편견도 문제입니다."

김 대표는 게임의 중독성을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뿐 아니라 많은 디지털 콘텐츠에 중독성이 있죠. 중독성을 교육과 사회문제 해결 등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해요. 요즘 모든 분야에서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도입하고 있어요. 그만큼 게임의 힘이 세다는 방증이죠. 게임의 중독성을 좋은 쪽으로 가져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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