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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출선 보낼 때 기쁘게…" UAE의 국가개조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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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수교 이래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UAE)를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다. 우리나라와 중동 최초이자 유일한 특별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은 UAE는 1971년 영국군이 페르시아만에서 철수하자 영국의 보호국이었던 6개 아미르국(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즈만, 움물꾸와인, 푸자이라)이 12월 2일 연합해 결성한 나라다. 이듬해 라술카이마가 합류하면서 일곱 아미르국 연방이 되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연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석유매장량 세계 5위(1,111억 배럴), 일일 생산량 세계 7위(271만 배럴)로 자원의 축복을 받은 나라지만, 석유 매장량의 약 94%가 아부다비에 몰려 있다. 아부다비와 함께 UAE의 중추를 이루는 두바이의 석유 매장량은 약 4%뿐이다. 두바이는 아부다비보다 8년 늦은 1966년 유전을 발견해 1969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UAE의 전 총리 라시드(1912~1990) 두바이 전 국왕은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낼 석유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낙타를 타셨고, 나는 메르세데스를, 나의 아들은 랜드로버를 몬다. 내 손자는 랜드로버를 몰겠지만, 내 증손자는 낙타를 몰 것이다.” 라시드 전 총리는 후손들이 다시 낙타를 탈 것을 염려해 요즘 세계적 화두인 탈화석연료 경제발전을 일찌감치 구상해 누구나 한 번쯤은 가고 싶어 하는 사막의 기적 두바이의 초석을 놓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할까? 척박하고 뜨거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심한 두바이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모습을 세상에 보여줬다. 전 세계 어디든 10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에미리트항공을 만들어 국제항공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간척지에 대규모 고급 아파트를 지어 해외 스타들에게 분양하며 부동산 시장을 띄우고,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 환골탈태했다. 사막의 도시가 중동의 싱가포르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난 4일에는 경제 규모를 2033년까지 현재의 2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에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처럼 들렸는데, 두바이라면 가능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간 보여준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바이가 불러온 변화의 요체는 혁신이다.
이슬람 이전 시대부터 아랍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순나(전통)였다. 사실 모두가 익히 아는 길, 즉 전통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조상 대대로 검증된 삶의 방식이 순나다. 이러한 사유가 이슬람 시대에도 이어져,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기피 대상이었다. 아랍어로 혁신을 뜻하는 비드아는 부정적인 용어다. 모두가 가는 길, 대대로 지켜 온 길이 순나이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안하고 위험하다. 그런데 두바이는 혁신의 길을 선택했고, 보란 듯이 성공했다. 두바이의 바탕을 다진 혁신적인 라시드의 꿈을 이제 아부다비가 이어받았다.
“우리는 다소 뒤졌지만, 늦게라도 배우는 것이 아예 배우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우리는 뒤처진 이유를 압니다. 교육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지고 있는 재원을 모두 교육에 쏟아부어야 합니다. 왜냐면 지금으로부터 50년 후 우리는 마지막 석유를 배에 실어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50년 후 마지막 석유를 배에 실을 때 우리는 슬플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한 투자가 옳다면, 그 순간을 축하할 것입니다.”
현 UAE 대통령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아부다비 국왕이 왕세제로 2015년 2월 두바이 세계정부정상회의 주제연설에서 한 말이다. 석유 부국이 지향하는 석유 없는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석유는 사라진다. 교육투자로 미래를 준비하라!
가용할 수 있는 재원 측면에서 석유 자원이 풍부한 아부다비가 두바이보다 훨씬 유리하다. UAE 대통령은 아부다비 국왕이고, 총리는 두바이 국왕이다. 두바이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캐내 연방에 제안하면, 아부다비가 현실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독립채산제 같은 연방이지만, 국가발전에 중요한 국방, 안보, 산업 발전은 함께 힘쓴다. 대표적인 예가 우주산업이다. 두바이의 싱크탱크가 제안한 우주산업은 우주항공기술 불모지인 UAE를 완전히 바꿨다.
산유국이기에 돈은 많지만 원천 과학기술이 없는 UAE가 우주산업에 도전한다면 필요한 장비나 시설을 모두 돈 주고 사오리라 생각한다.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선진국이 기술을 공유하거나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 데다, 대개 자원 부국은 자체 개발보다 완제품을 사거나 대리 개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풍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체 무기를 개발하려 하지 않았고, 자국 기술진 부족으로 개발을 시도하지 못한 사실이 좋은 예다. 그러나 UAE는 달랐다. 기술을 이전해 줄 나라와 협력해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을 발전시켜 필요한 것을 사지 않고 직접 만드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러한 신념의 산물이 2018년 쏘아올린 인공위성 칼리파샛(Khalifasat)이다. UAE 항공산업의 초석을 놓은 칼리파샛은 UAE와 한국 기술진이 팀을 이뤄 성취했다. 인공위성을 사올 수도 있었지만, UAE는 연구원을 한국에 보내 기술을 배우게 했다. 한국과 협력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기술 이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옴란 샤라프 외교부 과학기술 차관은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인공위성 제작에 참여했고 현재 우주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 12월 세미나에서 만난 샤라프 차관은 한국에서 왔다는 필자의 말에 활짝 미소를 띠며 우리말로 인사하더니, 한국이 이전해 준 기술을 바탕으로 UAE 기술진이 다시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연수하며 우주항공기술을 소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이든 직접 만들라는 정부 명령에 기술진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기술을 발전시켜야만 했다고 했다.
바라카 원전도 마찬가지다. 기술을 전수하겠다고 나선 나라가 한국밖에 없었기에 UAE는 우리와 손을 잡았다. 카타르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볼 수 없는 혁신의 비결은 바로 배워서 직접 만들겠다는 결의에 있다. 배우려는 의지, 스스로 만들려는 의지가 국민이 1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UAE에 있다. 50년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아랍에미리트가 자국민 교육에 투자하는 이유다.
UAE도 탈화석연료 산업다각화를 꿈꾸는 이웃 나라들처럼 2030 비전이 있고, 재생에너지 개발과 함께 비석유분야 산업 발전을 위해 국가적으로 돈이 될 만한 산업을 키우고자 노력하며 굵직굵직한 국제 행사를 끊임없이 유치하고 있다. 2020 두바이엑스포에 이어 올해는 COP28(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을 연다. 그러나 여느 나라와 비교해 미래 비전에서 확실한 차별성은 이 나라 지도자들의 혜안이다. 무함마드 빈 라시드 총리의 국가경영 10계명은 압권이다. 지도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라가 뒷걸음칠 일이 있을까?
①국민을 섬겨라. ②자리에 연연하지 말라. ③계획을 세워라. ④스스로를 점검하라. ⑤협력팀을 만들어라. ⑥혁신하지 않으면 물러나라. ⑦소통하라. ⑧항상 경쟁하라. ⑨지도자를 만들어라. ⑩삶을 바꾸어라.
특히 6번째 계명은 눈여겨봐야 한다. “혁신하지 않는 정부는 늙는다. 아이디어가 있어야 경쟁자를 모두 물리친다. 새로운 경제는 혁신에 달려 있다. 훌륭한 아이디어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혁신은 이미 국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돈은 많지만, 산업협력 때 돈만 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UAE는 움직이고 있다. 화성 탐사선 ‘아말’이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달 탐사 로버 ‘라시드’도 발사했다. 우주를 미래 먹거리로 삼아 기술 이전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자체 기술을 개발해 혁신적인 발전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혁신의 꿈이 우주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도 퍼질 것이다. 50년 후 석유 없는 부국으로 살아남는 꿈을 이루기 위해 UAE는 지금 힘차게 세계로, 우주로 달리고 있다. 반세기 후 우리나라가 UAE옆에서 함께 박수치며 기뻐할 수 있길 바란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중동-이슬람 전문가다.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이슬람학 석사, 이란 테헤란대에서 이슬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 전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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