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로 세금 혜택에 선물 받고 내 고향도 살려볼까

입력
2023.01.10 04:30
14면

고향사랑기부 지역재생 위한 다목적 카드
대도시 집중 지방세, 낙후지역 분산 효과
지역 복원 기여한다는 점에서 고무적 제도
지역 대립구도 해소, 답례품 내실화 필요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 구조도. 행정안전부 제공

고향사랑기부제 구조도. 행정안전부 제공

<47> 지역소멸 강력 우군 ‘고향사랑기부의 힘’

인구감소·경제침체의 지방권역이 갈림길에 섰다. 인구 악재로 순환경제가 멈추자 활력 상실의 불모지대로 전락할 처지다. 선택지는 ‘생존로컬 vs. 소멸지역’ 둘뿐이다. 로컬복원은 벌써 시작했어도 이미 늦었기에 그만큼 실효적인 대책실행이 절실해진다. 중앙도 지역도 위기감은 공감한다. 권한·예산을 독점했던 중앙정부도 다양한 법률·제도로 의존에 익숙했던 지방자치단체의 자력 호흡을 주문한다. 다 살리기 힘들기에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지역판 생존경쟁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229개 지자체의 생존·성장을 위한 한판 승부는 시작됐다. 불을 댕긴 착화제는 고향사랑기부제다. 2021년 겨우 법안이 통과됐을 정도로 숱한 견제·반발에도 불구, 제도화에 성공한 사례다. 불균형의 인구분포와 비정상의 도농격차를 완화할 사업재원의 다양성·민간성에 동의한 덕이다. 고향사랑기부제가 본격화된 2023년은 지역활력의 차별적 경쟁실험이 시작될 원년이다. 선행모델인 일본사례를 보건대 갈수록 재원 확보·복원 성과의 지역격차는 꽤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온도차는 크다. 역할·파장을 눈치챈 곳은 사활을 걸고 기부 유치에 열심이다. 반면 지역운명을 가르는 대형 재료임에도 여전히 탁상행정·복지부동의 눈치보기 지자체도 적잖다.

고향사랑기부가 쏘아 올린 복원경쟁 ‘엇갈릴 지역운명’

고향사랑기부는 주소지를 제외하고 고향·인연지역 등에 일정액을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함께 지역답례품까지 받도록 한 제도다. 1인당 연간 500만 원까지로 답례품은 기부금의 30%에서 제공된다. 10만 원까지는 전액공제, 넘으면 16.5%를 공제한다. 로컬경쟁은 시작됐다. 제주·강원 등 몇몇은 일찌감치 사전광고를 제작해 역외거주의 잠재기부자를 찾아나섰다. 기부금이 많을수록 지역활성화의 강력한 금융재원이 된다. 쥐꼬리 자체예산이 아닌데다 중앙매칭의 재원갹출도 아니라 꼬리표 없는 자율활용도 가능하다. 벌써 어디에 쓸지 고심하는 곳도 많다. 최소한 인구유출·상권붕괴의 지방권역은 매력적인 재정확충이 예상된다. 답례품 라인업은 기부결정을 가늠할 유력한 관전포인트다. 시행 초기임에도 지역격차는 벌어진다. 문경(경북)은 152종류나 내놨다. 반면 지자체의 10% 안팎은 마땅한 답례품조차 못 골랐다. 무엇보다 개인은 기부 안 할 이유가 없다. 10만 원만 기부해도 전액공제에 3만 원(답례품)은 덤이다. 수익률 130%의 짭짤한 카드다. 시행착오만 개선되면 제도안착·기부확대는 시간문제다. 비교열위인 도시권역과 권한 하방의 중앙정부로서는 박탈감·소극성이 당연하나, 대세에 맞서기란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4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동아일보 주최로 열린 ‘2022 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4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동아일보 주최로 열린 ‘2022 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고향사랑기부는 도농격차·인구문제를 풀어낼 넛지(nudge) 중 하나다. 돈이 멈춰선 로컬단위 재생사업에 물꼬를 열어줄 강력한 혁신제도다. 예산의존적인 기존 루트의 제반 한계를 극복할 달라진 마중물로 제격인 까닭이다. 선행국가인 일본도 모범사례 대부분은 새로운 윤활유 덕에 지역복원에 성공했다. 지역재건에 쓰일 돈의 다양성·자율성을 장기간 고민한 결과다. 한국의 균형발전론처럼 백약이 무효인 열도개조론의 실패가 안겨준 값비싼 교훈이다.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에도 열도 전역의 지역소멸만 심화시켰다. 방향전환은 2014년부터 시작된 ‘지역창생’이 국가의제로 떠오른 뒤부터다. 금융에 한정하면 ‘중앙예산→민간재원’의 변화기조다. 사업성격상 여전히 재정주도적이지만, 적게나마 민간에서의 재원조달이 확대되며 달라진 복원 성과를 쌓기 시작했다. 중앙만 쳐다보며 행정·형식적인 프로젝트만 위탁·수행하던 지자체도 변했다. 능동·적극적인 사업주체로 변신·포진하며 로컬만의 자산·방식으로 맞춤형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며 자율성·역동성을 길러냈다. 제한·경직적일 수밖에 없는 혈세 위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민간재원이 활용된 것이다. 그 결과 민간의 자발·다각적인 자금유입을 유도한 고향납세(ふるさと納税)를 채택했다. 고향납세는 고향사랑기부제의 원형으로 대의명분·실리성과의 양수겸장을 노린 로컬 돈줄의 상징이 됐다.

참신한 고향납세 아이디어 ‘지역환류의 신금융’

일본의 고향납세 건수 및 금액추이. 그래픽= 김문중 기자

일본의 고향납세 건수 및 금액추이. 그래픽= 김문중 기자

고향납세는 꽤 성공했다. 2008년 시작된 후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안착·확산했다. 첫해 81억 엔이던 기부액은 2021년 8,302억 엔까지 뛰었다. 건수(복수기부)는 4,500만 건에 육박한다. 홋카이도 시라누카쵸는 총 세수의 6배(63억 엔)를 기부금으로 모았다. 이 밖에도 기부액이 주민세를 웃도는 곳이 많다. 대도시에 집중된 지방세를 낙후지역으로 돌리는 효과 발현이다. 인구감소·재정악화로 돈줄이 마른 지자체에겐 큰 힘이다. 지역경제의 활로 모색과 재정 확충에 우호적이다. 홍보기능까지 갖춰 지역브랜드의 발신 창구로 쓰인다. 기부혜택은 한국보다 좋다. 공제상한액 중 자기부담금(2,000엔)을 뺀 만큼 공제된다. 대상·금액·횟수는 무제한이다. 기부액은 로컬단위 순환경제를 위한 재생사업에 쓰인다. 답례품으로 안 팔리던 지역물품·서비스를 지자체가 사주니 지역경제로서는 수요자극제로 좋다. 답례품 발주·구매가 지역경제의 순환을 돕는다. ‘기부발생→재정확보→답례발주→매출증가→고용안정→소비확대→세수증가’의 선순환이다.

고향납세는 ‘세금공제+답례품+지역재생’의 다목적카드다. 기부자의 관심은 세금공제·답례품에 쏠리지만, 결과적인 로컬복원에의 기여란 점에서 고무적이다. 금융가뭄이 한계였던 지역단위에 안정적 자본공급을 해준다는 점도 좋다. 세제권한을 쥔 중앙정부도 나쁠 건 없다. 지역붕괴 후 투입할 재정을 사전에 세제혜택으로 돌렸을 뿐이다. 지자체로선 길게 봐 해당 지역의 지명도와 함께 로컬리즘의 인정도 기대된다. 즉 화제의 답례품이면 입소문으로 부차적인 관심 유도·평판 향상에 닿는다. 관광차원의 교류인구가 확보되기에 출향인사를 섭외한 홍보전쟁도 치열하다. 중앙정부도 거든다. 더 편한 방식으로의 기부독려책을 제안한다. 2015년 5곳 이내에 기부하면 확정신고 없이 공제해주는 원스톱특례제도도 도입했다. 답례품은 진화한다. 생활 전반을 커버하면서 소개·전매하는 사이트도 성황이다. 금액·지역·품목별로 나뉜 답례품은 종류만 20만 개를 웃돈다. 기부확대를 위한 경쟁격화는 심화된다. 지역특산물부터 시설입장권·여행권(항공·숙박권·차량)·상품권 등 다종다양하다. 호화답례품일수록 기부독점을 유도할 동기가 커져서다.


‘고향사랑기부금 제도’를 통한 실질적 효과. 그래픽= 강준구 기자

‘고향사랑기부금 제도’를 통한 실질적 효과. 그래픽= 강준구 기자


순기능만큼 부작용 ‘고향사랑기부의 능동적 진화’

고향사랑기부제가 순항하자면 부작용에 대한 선제대응이 중요하다. 가령 과잉경쟁은 기부문화의 건전성을 저해하고 세금유출의 염려를 유발한다. 과도경쟁과 기부독점이 빚어낸 지역 간 대립구도도 문제다. 도시주민의 농촌기부가 보통이라 도시불만은 나날이 커진다. 사실상 역내세수를 뺏기는 것과 같다. 특산물이 부족해 답례품마저 제한된다. 그럼에도 제로섬이라 경쟁낙오는 두렵다. 중앙의 탄력적인 제도개선도 목격된다. 과당경쟁에 브레이크를 거는 식이다. 일본도 2019년부터 실질적인 인허가제로 제도방침을 선회했다. 야합적 부작용도 걱정된다. 물품선정의 재량권은 지자체 몫이다. 기획공모·경쟁입찰 등 방법론은 많지만, 사실 엄밀하지 않은 블랙박스로 불린다. 어떤 상품·서비스로 기부금을 더 모을까가 포인트라 엄밀한 경제논리는 후순위다. 공무원도 따져 고를 수 없어 사업 취지에 둔감해진다. 답례품 납품기업은 품질을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선전·홍보를 지자체가 해주니 납품하면 끝이다. 답례품 특수(特需)나 마찬가지다. 품질·가격을 위한 혁신동기가 떨어지면 좀비기업의 연명수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새로운 ‘공공사업’이라는 질타도 있다.


지난해 대전광역시의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선정 설문 광고물. 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에 기부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세금혜택은 물론 고향 특산물을 받을 수 있다. 실제 답례품으로 잘 팔리지 않던 지역물품이나 서비스를 지자체가 사주니 지역경제로서는 수요 자극제로 좋다. 대전시 제공

지난해 대전광역시의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선정 설문 광고물. 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에 기부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세금혜택은 물론 고향 특산물을 받을 수 있다. 실제 답례품으로 잘 팔리지 않던 지역물품이나 서비스를 지자체가 사주니 지역경제로서는 수요 자극제로 좋다. 대전시 제공


그럼에도 고향사랑기부는 지역복원의 강력한 신금융이다. 부작용을 극복해 본연의 제도 취지를 살려내는 게 관건이다. 인기만큼 갈등도 많지만, 제도가 갖는 명분·실리의 대세판단은 확고하다. 때문에 고향사랑기부는 계속해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규모를 봐도 성장성은 기대된다. 일본의 경우 세금감면용으로 기부금을 전액 낸다면(잠재적인 기부공제액) 최대 2조5,825억 엔까지 시장창출이 가능하다. 반대로 활용액은 잠재총액의 20%에 불과하다. 기부하지 않은 80%가 추가로 반영될 여지가 있다. 일본사례를 보건대 고향사랑기부는 지역금융의 추가적 확대 토대가 된다. 가령 지자체 중 일부는 지역활성화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조달에 크라우드펀딩을 채택해 민간자금을 공급받기 시작했다. 혹은 출자 형태로 해당 지역에 이슈별로 돈을 내면 고향주주제를 적용해 할인·무료 등 지역자산을 쓸 때 특별대접도 해준다. CDC(Community Development Company)처럼 지분출자의 길을 민간·개인에게 열어준 곳도 있다. 2023년 한국은 가까스로 첫 출발에 섰다. 고향사랑기부는 간만에 제공된 로컬생존의 승패를 가를 필수카드로 접근하는 게 옳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