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자료 삭제' 산업부 공무원 3명 유죄… 백운규 재판에 영향 주나

입력
2023.01.09 15: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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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등 3명 집행유예 "감사원 요구 자료 삭제"
윗선 지목된 백운규 채희봉 등 직권남용 기소

월성원전 재판. 한국일보 자료사진

월성원전 재판. 한국일보 자료사진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감사원에 일부 자료만 제출해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이들이 기소된 지 2년 만의 선고로, 월성 원전 수사와 관련한 첫 선고 결과다.

대전지법 형사11부(부장 박헌행)는 9일 감사원법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방실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업부 국장 A(56)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산업부 과장 B(53)씨와 서기관 C(48)씨에게는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A씨와 B씨는 감사원으로부터 감사 자료 제출을 요구받기 직전인 2019년 11월쯤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방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C씨는 일요일인 2019년 12월 1일 오후 11시쯤부터 월요일인 2일 오전 1시쯤까지 2시간 동안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530건을 삭제한 혐의로 기소됐다. C씨는 2일 오전 예정된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을 앞두고 자료를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고의로 자료를 삭제하거나 일부만 제출해 감사원 감사를 방해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감사원 요구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삭제해 감사기간이 당초 예상했던 5개월보다 더 지연됐고,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산업부 개입 의혹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와 관련해 "삭제한 자료는 개인이 작성한 중간보고서 형태인 만큼 공용전자기록물로 볼 수 없다"는 변호인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보고가 이미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자료 삭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객관화된 자료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방실침입 혐의에 대해선 C씨에게 사무실 출입 권한이 있는 만큼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산업부 공무원들에게 유죄가 선고되면서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로 기소된 백운규(59) 전 장관과 채희봉(57)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의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A씨 등이 윗선의 위법행위를 은폐하려고 자료 삭제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감사원 감사를 방해했다는 검찰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A씨는 앞서 백 전 장관 등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애초 월성 원전을 2년 반 더 가동하는 방안을 장관에게 보고했다가 질책을 받고 즉시 폐쇄로 방향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원전 조기 폐쇄는 백 전 장관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원전 즉시 가동 중단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 2018년 4월 2일 청와대 내부망에 올라온 문재인 전 대통령의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라는 댓글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전=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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