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과 감독 경질, 그리고 흥국생명

입력
2023.01.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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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GS칼텍스 KIXX 배구단의 경기에서 흥국생명의 김연경이 서브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GS칼텍스 KIXX 배구단의 경기에서 흥국생명의 김연경이 서브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의 팬들은 최근 경기를 볼 때마다 불만을 터트렸다. 감독의 선수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1년 만에 흥국생명에 복귀한 '월드스타' 김연경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답답한 전술로 배구의 재미를 떨어뜨린다고 말이다. 꼴찌에 가까운 성적으로 배회하던 흥국생명이 김연경 복귀 후 2라운드(9승 3패)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어쩐 일인지 재미없는 경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의 로테이션 전술이 도마에 올랐다. 김연경과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를 나란히 전위와 후위에 세우는 전술 때문이다. 둘 다 전위에 있을 땐 날카로운 공격과 함께 장신(190㎝ 이상)을 이용해 블로킹 등 수비가 통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후위로 이동했을 땐 수비 불안 등으로 실점 위험성이 커진다.

그러던 와중에 일이 터졌다. 지난 2일 흥국생명이 권 감독과 김여일 단장을 동반 결별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사실상 경질이었다. 임형준 구단주가 밝힌 결별 이유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서였다. 시즌 성적이 좋은 데다 관중 동원도 1위로 여자 배구 흥행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결정이었다.

권 감독은 구단이 선수 운영에 개입했다고 폭로하며 맞불을 놨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기용하라"는 윗선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경질됐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권 감독의 선수 운영 부분에 이목이 쏠렸다.

5일 신용준 흥국생명 신임 단장은 이 문제부터 꺼내들었다. 그는 GS칼텍스와 홈경기를 앞두고 기자간담회에서 "선수 운영에 대해 (전임) 단장과 감독 간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로테이션에 있어 서로 의견이 안 맞았고, 팬들이 원하는 건 전위에 김연경과 옐레나를 함께 세우는 게 아니니 바꿨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 기용 개입이 아닌 운영에 대한 갈등" "팬들과 유튜브에서 로테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등으로 해명했다. 즉 구단이 팬과 유튜버들을 볼모로 감독과 단장을 사퇴시켰다는 황당한 논리다.

팬들은 감독의 잘못된 전술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이상한 전술이라도 그건 감독의 전권이고 책임이다. 그럼에도 신 단장은 "우승을 위해서 상의도 좀 하고 가는 게 맞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로테이션 관련 개입을 했지만, 이것이 선수 기용 개입은 아니라는 주장만 폈다.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GS칼텍스 KIXX 배구단의 경기에서 흥국생명 팬들이 '팬들을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GS칼텍스 KIXX 배구단의 경기에서 흥국생명 팬들이 '팬들을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보도한 언론들은 '고구마 해명'이라며 흥국생명의 답답한 처사를 비판했다. 2년 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재영·다영 자매의 '학폭 논란' 사태 당시에도 흥국생명의 안일한 해명 등 대처가 논란을 키웠었다. 명확하지 않은 해명과 무성의한 사과는 여론의 뭇매만 따라올 뿐이다.

당시 12년 만에 국내 리그에 복귀했던 김연경은 학폭 논란 사태가 터지면서 제대로 시즌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지난해 6월 국내에 다시 복귀하면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배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감독 경질 사태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과연 선수들이 구단을 믿고 운동할 수 있을까. 팬들은 이날 경기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더 이상 구단의 일방적인 횡포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강은영 스포츠부 차장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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