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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마운트와 냉정한 국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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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동예루살렘 템플마운트(성전산)는 한국인도 많이 찾는 유대·기독·이슬람교의 성지이다. 세 종교 공동 조상인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신께 바치려 했던 곳이며, 그 후손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었다. 로마제국에 의해 파괴되기 전 예수가 처형된 후 부활한 곳은 지척이다.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가 멀리 메카에서 날아와 승천할 때 디뎠던 바위도 여기 있다. 공동의 성지인 만큼 지배자가 자주 바뀌었지만, 그 중심은 12세기 이후 줄곧 이슬람 사원이 이 자리를 지켜왔는데 바로 알아크사 사원(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이다.
□ 템플마운트 지배권은 더 복잡하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했지만, 국제적으로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점령 후에도 알아크사 관리권을 요르단의 이슬람 종교기관에 남겨뒀다. 그래서 템플마운트에서 이슬람 외 다른 종교의식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유대교인들이 템플마운트 성곽 밖인 ‘통곡의 벽’에서 종교행사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이스라엘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아랍에미리트(UAE)를 필두로 바레인 수단 모로코와 국교를 정상화한 후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넓혀 왔다. ‘공동의 적’인 이란의 핵무장 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 아랍 에너지와 이스라엘 첨단기술의 상호보완 관계 등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교 수립도 머지않았다. 그런데 지난 3일 민감한 템플마운트를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치안장관이 기습 방문하면서 아랍과 이스라엘의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아랍인 혐오 발언으로 전과가 있는 극우파 지도자다.
□ 벤그비르의 도발에 무슬림 국가는 물론 유엔과 미국 유럽연합 등 전 세계가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다음 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UAE 방문도 취소되면서, 네타냐후 극우 내각 출범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3일 “일부 극단주의자가 아랍과 이스라엘 화해의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천 년 묵은 종교적 원한도 국익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게 국제 관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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