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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토끼

입력
2023.01.06 04:30
25면
2023년 첫날인 1일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릉 앞 바닷가에서 한 해맞이객이 토끼와 OK를 뜻하는 손 모양을 하며 새해 첫 해돋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첫날인 1일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릉 앞 바닷가에서 한 해맞이객이 토끼와 OK를 뜻하는 손 모양을 하며 새해 첫 해돋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판소리는 소리꾼의 다채로운 표현을 통해 청중들의 청각 시각 지각의 미적 경험을 최대화한다. 특히, 중요한 인물이나 대상의 정체를 탐색하는 대목에서의 언어적 시각적 청각적 표현들은 앎의 경험을 새롭게 한다. 황제에게 진귀한 연꽃을 바친 도사공은 심청을 품은 연꽃을 처음 발견할 때 '저것이 무엇이냐. 금이냐. 금이란 말씀 당치 않소'부터 시작하여 연신 헛다리를 짚는다. 그런 도사공을 보며 이야기를 훤히 아는 청중들은 답답해하다 능청스럽게 옥신각신 이어지는 사설에 빠져들어 창자(唱子)와 함께 연꽃의 정체를 알아내며 흥겨워한다. '해도 같고 달도 같은 어여쁜' 춘향이를 처음 본 이 도령의 '마음이 으쓱 머리끝이 쭛빗 어안이 벙벙 흉중이 답답 들숨 날숨 꼼짝달싹을 못 하는' 흥분된 가슴을 함께 부여잡는다.

병에 걸린 용왕에게 특효약인 토끼 간을 구하러 가는 별주부는 난생처음 육지 세상을 만난다. 별주부에게 화공들이 그려준 토끼 화상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천하명산 경치 보는 눈, 앵무 공작 지저귀는 소리 듣는 귀, 봉래방장 운무 중에 냄새 잘 맡던 코, 난초지초 꽃 따 먹던 입, 만화방창 화림 중에 펄펄 뛰던 발, 어린 새끼 품에 품고 엉거주춤 펄펄 뛰어 두 귀는 쫑긋, 두 눈은 두리두리, 허리는 잘록, 꽁지는 뭉툭, 앞발은 짧고 뒷발은 길어 깡종깡종 뛰어가는' 화려한 언어적 유희는 청중의 머릿속 '깡충깡충 뛰면서 어딘가를 가는 산토끼' 대신 마치 토끼를 처음 만나는 것처럼 소리꾼과 함께 관찰의 경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일상의 지루한 반복이 아닌, 처음 만나는 하루하루를 관찰하며 깊이 알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최혜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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