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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떠나라"는 미국, "잃을 게 너무 많다"는 한국 기업... '동맹의 딜레마'

입력
2023.01.05 04:30
수정
2023.01.05 14:1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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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한미동맹 70년 ④ '동맹의 그늘과 도전'
'미중 갈등' 원치 않는 싸움 휘말린 한국 기업
미국의 탈중 압박에 지정학적 리스크 나날이 상승
반도체·자동차 업계 "세계 최대 시장 포기 못 해"
전문가들 "경쟁력 키워 미중 갈등 리스크 최소화"

편집자주

2023년 한미동맹이 70년을 맞았다. 전후방 주한미군기지 현장 르포, 전술핵 재배치 찬반 대담, 전문가 인터뷰, 70년의 역사적 장면 등 다각적 조망을 통해 동맹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본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발리=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발리=연합뉴스

#. "중국 사업에 따르는 지정학적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탈(脫)중국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중국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국 대기업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경쟁이 심화하는 와중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처지를 "벼랑 끝"에 비유했다. "중국 시장을 떠나라"는 미국의 압박은 커지지만, 이미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생산 역량을 강화해 온 터라 동맹에 대한 '의리'를 지키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는 의미다.

#. 중국의 또 다른 한국 기업 관계자는 "중국에서 영업하는 웬만한 한국 기업들은 모두 중국 철수를 플랜 B로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플랜 B일뿐, 14억 인구를 거느린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포기하긴 어렵다"고 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반도체·자동차 업계 '딜레마'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미중 갈등이라는 지정학적 긴장이 일시적 변수가 아닌 상수로 굳어지면서다.

미중 대립이 본격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는 갈등이 대체로 두 나라의 무역전쟁에 국한됐다. 미중이 서로를 향해서만 고관세 공격을 주고받았기에 한국 기업이 직접 받는 타격은 크지 않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양상이 달라졌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맹추격하는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 미국은 "동맹과 함께 중국을 주요 공급망에서 배제한다"는 전략을 앞세웠다. 중국 시장을 바탕으로 몸집을 키워온 한국의 반도체·자동차 기업들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을 강요받기에 이르렀다.

2014년 중국 시안에 완공된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반도체 공장의 전경.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14년 중국 시안에 완공된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반도체 공장의 전경.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탈중국 압박에 가장 긴장하는 건 반도체 업계다.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을 묶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 동맹'을 결성해 중국을 포위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지난해 10월에는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고성능 컴퓨터용 반도체와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 기술의 중국 판매를 금지한 것이다.

중국에 반도체 생산 설비를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년간의 유예 조치를 받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1년 뒤에도 또 한 번 유예를 받을지, 오히려 강화된 수출 제한 조치를 받을지 가늠할 수 없다. 베이징의 한국 정부 산하 기관 관계자는 "지금은 반도체 산업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전기자동차 산업이나 전략 물자 산업, 금융 업계도 미중 경쟁이라는 원치 않는 싸움에 휘말릴 수 있다"며 "이제 탈중국 압박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말했다.

핵심 광물 공급망도 탈중국 압박... "중국 의존도 어쩌나"

미국은 배터리 제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광물 공급망 분야에서도 동맹의 탈중국을 사실상 강제한다. 올해 3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의 40% 이상(2027년엔 80% 이상으로 단계적 상승)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하면 세액 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추가 지침을 통해 "리스·렌트용 전기차는 북미산이 아니라도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다소 물러섰지만, "미국산 핵심 광물을 쓰지 않으면 미국에서 자동차를 판매할 수 없다"는 IRA의 핵심 원칙은 고수했다.

이차 전지 핵심 광물의 중국 수입 의존도. 대부분의 핵심 광물에서 중국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차 전지 핵심 광물의 중국 수입 의존도. 대부분의 핵심 광물에서 중국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의 중국산 핵심 광물 수입 의존도가 유독 높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내놓은 '이차 전지 핵심 광물 8대 품목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산화코발트·수산화코발트(83.3%), 산화리튬·수산화리튬(81.2%), 탄산리튬(89.3%) 등의 핵심 광물 수입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수입액 기준 중국 의존도 역시 58.7%로, 일본(41%)과 독일(14.6%)보다 높다.

핵심 광물 수입 구조를 재건하는 수준의 수입선 다변화를 꾀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수입 비중을 줄이면 원가 상승에 따른 손실이 불가피하고, 가만히 있다가는 미국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는 딜레마적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떠나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워졌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을 떠나기 힘든 처지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D램과 낸드를 각각 50%와 30%씩 생산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국이 차지하는 한국 반도체 수출 비중은 지난해 39.7%로, 2000년(3.2%) 이후 12배 이상 성장했다.

중국 현지의 한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설비, 소재, 부품과 노하우가 모두 여기에 있는데, 동맹 논리로 사업을 움직일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토로했다.

최근 5년 간 한국 기업의 대(對)중국 투자 규모. 미중갈등 국면에서도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 총액이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5년 간 한국 기업의 대(對)중국 투자 규모. 미중갈등 국면에서도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 총액이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5년 간 중국에 신규 진출한 한국 기업 규모. 코로나19 방역 여파 등으로 새로 중국의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 5년 간 중국에 신규 진출한 한국 기업 규모. 코로나19 방역 여파 등으로 새로 중국의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베이징에 소재한 한국창업원의 고영화 원장은 발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미국의 '중국 때리기'로 우리 기업이 중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릴 시간을 번 측면도 있다"며 "탈중국을 할 게 아니라 중국 설비에 대한 더욱 공격적 투자를 해야 할 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 추이는 미중 갈등이 첨예해진 최근 수년간 오히려 증가했다. 한국수출입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액은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보복이 본격화한 2017년 32억2,500만 달러에서 2018년 48억600만 달러, 2019년 58억6,500만 달러, 2020년 45억1,200만 달러, 2021년 66억8,100만 달러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반도체, 발광 다이오드, 액정 등 첨단 기술 분야 기업이 투자 상승을 유도했다.

같은 기간 중국 내 신규 한국 법인(중국에 새로 진출한 한국 기업) 숫자는 2017년 538개에서 2018년 490개, 2019년 466개, 2020년 246개, 2021년 261개 등으로 5년 사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미중 갈등 증폭에 따른 투자 위축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중국의 봉쇄 정책 영향도 컸다.

‘2021 상하이 국제모터쇼’ 참가자들이 현대자동차 전시관에서 신형 전기차를 관람하고 있다. 상하이=한국일보

‘2021 상하이 국제모터쇼’ 참가자들이 현대자동차 전시관에서 신형 전기차를 관람하고 있다. 상하이=한국일보

자동차 업계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한 해 판매량이 2,100만 대가 넘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기류다. 한국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생산은 다른 업종에 비해 소재·부품·조립 생산이 일체화된 밸류체인 산업의 성격이 특히 강하다"며 "수십 년을 들여 구축한 판로를 버리고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중국을 떠나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결국 미중 갈등 리스크 피하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글로벌혁신센터(KIC중국)의 김종문 센터장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 수출 통제법 적용을 1년 유예한 그만큼 한국의 영향력이 큰 데 따른 것"이라며 "우리의 경쟁력을 키워 미중 갈등의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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