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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시위가 30년 뒤 남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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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휠체어 이용자가 고속버스를 타려고 한다. 고속버스 회사는 휠체어째 버스에 탈 수 없으니 휠체어를 짐칸에 싣고 계단을 올라가 타라고 했다. 이동할 권리가 침해된다며 휠체어를 타는 이용자 여러 명이 항의했다. 결국 누군가가 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 고속버스 회사가 패소해 그동안 항의했던 휠체어 이용 시민 2,100명에게 약 30억 원을 지급하게 됐다.
여기서 문제. 고속버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누구일까? 이 질문을 글을 쓰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던졌다. 다들 "장애인들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땡. 정답은 '법무부'다.
물론 한국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최대 고속버스 운영사인 '그레이하운드'를 대상으로 2016년 미 법무부가 제기한 소송 건이다. 1991년 시행된 미국장애인법(American Disabilities Act)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미국 고속버스를 막아선 휠체어 이용 활동가들의 시위가 1980년대에 있은 후 30년 만의 성과였다.
한국에는 이런 법이 없을까? 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법무부가 누군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없다. 보통 인권위의 권고, 법원의 조정명령 등으로 끝나곤 한다. 미국에 비해 국가가 장애인 차별을 해결하는 데에 소극적이란 뜻이다.
거의 수백 일 동안 지속되는 지하철 시위를 보는 마음이 안타깝고 괴롭다. 저 시위의 결과물이 결국 나이 드신 우리 부모님, 휠체어를 타는 내 딸에게 도움이 될 거란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2016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무의'의 대표 프로젝트인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는 지하철 환승 엘리베이터 위치가 너무 멀고 복잡해서 만들었다. 원래는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스티커를 역에 직접 붙이고 싶었지만 임의로 스티커를 붙일 수 없기에 지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지도를 보고 작년 10월 서울교통공사에서 연락이 왔다. 지하철역 9개에 무의가 원래 의도한 것처럼 '바닥 스티커'를 붙일 예정인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지도를 만든 지 4년 만에 들은 낭보인 셈이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스티커 덕분에 교통약자들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더 많이 몰려들 텐데… 하는 걱정도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1대뿐이라 그 앞에서 멀쩡히 걷는 누군가가 휠체어를 새치기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겠구나 싶어서였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 이들의 얼굴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가 지도를 만든 것도, 먼 엘리베이터로 가는 위치 표기를 하느라 스티커를 붙이게 된 것도 결국 엘리베이터를 지하철에 도입하겠다며 20년 전부터 시위한 시위대들이 그 출발점인 것 아닌가.
지난 연말 BTS를 좋아해 한국에서 장기 체류하며 일하고 있다는 한 미국인을 만났다. 바닥 스티커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보았다며, 자신도 슈트케이스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맨 적이 있다며 고마워했다. 왜 미국에서 장애인 권리가 좀더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걸까. 그의 결론은 명쾌했다. 장애인 이동권은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 인권이라 연방법으로 정해 법무부가 나서는 거라고.
2023년 지금의 지하철 시위는 30년 후 어떻게 기억될까. 미국 고속버스 장애인 시위가 법무부 소송으로 이어진 것처럼 언젠가는 한국 장애인 인권뿐 아닌 전반적 인권의 역사로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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