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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케어 폐기' 기치 걸었지만… 尹케어 갈 길도 다르지 않다

입력
2023.01.04 16: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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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훈성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 그래서 건강보험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일명 '문재인케어')을 이처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급여와 자격 기준 강화로 건보 낭비와 누수를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닷새 앞서 보건복지부는 새 건보 정책 공청회를 열고 문재인케어의 핵심인 보장성 강화를 "건보 재정건전성 유지의 위협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감사원이 지난해 7월 공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보고서가 근거였다.

보건 당국이 전임 정부가 수립한 건보 정책을 문제 삼고 대통령이 공격적 언사로 이를 뒷받침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케어 폐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따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보편적 의료'라는 당위론 속에 모든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건보 보장성 확대 정책의 후퇴로 읽힐 수 있는 사안이라 논란은 더욱 번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건보 재정 악화는 일찌감치 예견된 구조적 문제이고 오랜 논의를 거친 정책적 선택지도 마련돼 있는 만큼 정치적 공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尹정부 건보정책은 文케어 폐기?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

지난달 복지부 공청회에서 인용된 감사보고서는 재작년 11, 12월 복지부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을 상대로 건보 재정정책 수립 및 집행 실태를 점검한 결과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건보 보장 범위를 확대한 후 △과잉 진료 △과다 보상 △지출관리 미흡 문제가 커졌다는 판단을 보고서에 담았다. 특히 문재인케어로 급여(보험금 지급) 항목이 대폭 늘어난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의 실태를 집중 감사한 결과 불필요한 중복 검사 의심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건보 재정 고갈을 막고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며 △급여 항목 및 기준 재점검 △공정한 건보 자격 관리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 △재정누수 점검 및 비급여 관리를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원래 지난해 시행될 예정이었던 근골격계 MRI·초음파 검사 급여화를 보류하고 필수항목 위주로 '제한적 급여화'를 추진하고, 과다 외래의료 이용자는 건보 본인부담률을 높이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밝혔다. 이렇게 아낀 재원은 중증·응급·분만·소아 등 필수의료 체계를 구축하고 희소난치 질환, 응급 정신질환 등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윤석열 정부의 종합적인 건보 정책 로드맵은 내년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을 통해 공개된다.

의료계는 정부가 건보 재정 문제에 방점을 찍었을 뿐 새로운 정책 패키지를 꺼내든 건 아니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문재인케어 폐기'로 규정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복지부 대책이 문재인케어를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적인 내용은 그와 거리가 있다"며 "이전 정부들이 화두로 내세웠던 보장성 강화, 국민 의료비 부담 경감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면서 일부를 보완하려 한다고 보는 게 맞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복지부가 내년 건보 종합계획에 '재정구조 개편방안'으로 포함될 거라고 예고한 '지불제도 다변화'만 해도 포괄수가제, 총액제 등의 명칭으로 오랫동안 논의된 지출 통제 방안이다. 정부도 건보 보장범위 축소 우려를 의식해 "건강보험 역할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지난달 15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초음파·MRI는 전체 보장 확대의 1%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제고 방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제고 방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첫해인 2017년 8월 '건보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미용, 성형을 제외하고 치료에 필요한 항목은 전부 건보를 적용한다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 MRI, 초음파를 포함해 건보 혜택을 받지 못하던 3,800여 개 비급여 항목이 환자 본인 부담이 있는 '예비급여' 항목에 편입됐다. 비용 부담이 특히 컸던 '3대 비급여' 항목 가운데 선택진료비는 폐지, 상급병실료는 일부 1인실까지 보장됐고, 간병비는 건보 적용 병상(간호간병병상)을 대폭 늘려 부담을 완화했다. 소득 하위 50% 계층엔 본인 부담 상한액을 연소득의 10% 수준으로 낮췄다. 이를 통해 5년 임기 동안 건보 보장률(전체 진료비 대비 건보 부담액 비율)을 62.7%에서 70%로 높이는 게 목표였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문재인케어 시행으로 건보 재정에서 추가 지출된 의료비는 5년간(2017년 7월~2022년 6월) 총 21조2,616억 원이었다. 최근 5년간(2017~2021) 건보 지출 총액(342조 원)의 6.2% 수준이다. △중증 약제비(4조45억 원) △본인 부담 상한제(2조5,921억 원) △선택진료 폐지(2조3,354억 원) △초음파 급여화(1조9,462억 원) △간호간병병상 확대(1조9,399억 원) △MRI 급여화(1조125억 원) 등 지출액이 조 단위인 항목도 6개다.

통계를 보면 "(문재인케어에) 20조 원을 넘게 쏟아부었다"는 윤 대통령 지적이 틀리지 않다. 정부가 건보 재정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한 초음파·MRI 급여화에 3조 원에 달하는 큰 비용이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MRI와 초음파에 국한되긴 했지만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다른 건보 적용 항목에서도 부당 급여 사례가 적지 않을 거란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그렇다고 문재인케어를 싸잡아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으로 매도하는 건 성급하다는 평가가 많다. 건보 보장성 강화에 따라 여성 난임시술(9,013억 원), 노인 임플란트 본인부담 경감(7,382억 원), 노인 외료진료비 개선(6,780억 원), 아동 입원진료비 경감(4,311억 원) 등 의료 취약계층에 혜택이 돌아간 재원이 4조 원에 가깝다. 본래 비급여 항목이던 치료·검사가 건보 적용으로 비용 부담이 낮아져 이용이 늘어나는 '과소의료 해소'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화는 건보 재정 아킬레스건

건강보험 재정수지 그래픽=김문중 기자

건강보험 재정수지 그래픽=김문중 기자

문재인케어가 건보 재정에 부담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7년 69조3,352억 원이었던 건보 진료비는 지난해 93조5,011억 원으로 폭증했다. 이로 인해 건보 재정수지는 2018년 1,778억 원 적자를 내더니 이듬해 2조8,243억 원으로 적자폭을 키웠고 2020년에도 3,531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6년부터 20조 원대를 유지했던 건보 적립금도 17조 원대까지 줄었다. 2000년 건보 재정통합과 의약분업의 여파로 2001~2003년 적자를 봤을 뿐 줄곧 흑자를 유지했던 건보 재정수지가 변곡점을 맞은 것이다. 지난해 수지는 2조8,229억 원 흑자로 전환하며 적립금도 20조 원대를 회복했지만, 이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의료 이용이 감소한 데 따른 한시적 개선이란 분석이 많다.

주목할 점은 건보 지출은 문재인 정부 이전에도 매년 10% 안팎의 가파른 증가율을 보였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고령화로, 건보 급여 지출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32.2%에서 2020년 43.1%로 1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010~2018년 의료비 증가를 요인별로 구분한 연구에서도 인구 고령화가 의료비 증가분의 33%를 차지했다. 의료수가 상승은 36%, 의료서비스 이용 증가는 31%였다.

건보 지출이 증가하면 보험료를 올리거나 국고 지원을 늘려 충당해야 하지만, 양쪽 모두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데다가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상 증액에 제약이 있다.(보험료는 인상률 8% 이내, 국고 지원은 예상 보험료 수입의 20% 이내) 건보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 방향은 이런 점에서 정당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주요 기관들은 건보 재정 전망을 통해 경보를 울리고 있다. 건보공단은 재작년 발표한 전망에서 건보 누적 적자가 2040년 67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계했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9년 전망에서 건보 적립금이 2024년 소진된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런 전망치를 두고 지나치게 비관적인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출 통제에만 의존해선 안 돼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의 모습. 연합뉴스

고령화, 의료비 증가 등 장기 구조적인 재정 악화 요인이 있는 만큼 지출 효율화를 포함한 건보 재정건전성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보장 확대에 제동을 거는 방식의 지출 통제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엔 의문이 적지 않다. MRI·초음파 급여화의 경우 과소의료 해소 효과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최근 5년치 건보 급여비의 1%도 되지 않는다. 홍석철 교수는 "비필수 의료서비스 가격 인상, 본인 부담률 조정으로 문재인케어의 문제를 보완하면서 총액계약제 도입 등 대안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총액계약제는 보험공단이 의료기관과 총액으로 계약을 맺고 수가(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로, 개별 의료행위 단위로 진료비를 청구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 과잉의료 유발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건보 보장 수준이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이란 점에서도 보장성을 축소하는 방식의 건보 재정 건전화 정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의 의료비 총액 대비 공공재원 지출 비율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62.6%로 38개국 가운데 36위에 머물렀다. 1위 체코(87.7%)를 포함해 14개국은 80% 이상, 31개국은 70% 이상이었다. 복지부가 집계한 2020년 건보 보장률은 65.3%로 문재인케어의 2022년 70% 목표 달성은 요원한 상태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늘고 첨단 의료기술과 고가의 신약이 도입되는 현실에서 보장성을 높이지 않으면 건보 혜택 범위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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