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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기 가득한 시민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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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시민의 발’ 지하철이 연초부터 조마조마하다.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2일부터 다시 승·하차 선전전에 나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승차를 서울교통공사가 저지했다. 전장연은 법원 조정을 수용해 열차 운행을 5분 이상 지연시키지 않겠다고 했지만, 서울시장은 “1분만 늦어도 큰일 난다”며 막았다. 경찰은 지하철 탑승시위를 해온 전장연 회원 2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 지하철이 1분 넘게 멈춘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지난달에만 5번이나 고장 났던 기억이 고스란하다. 한강 한가운데 멈춰 서질 않나, 출입문을 연 채로 달리질 않나, 선로에서 불꽃이 튀질 않나. 시민의 발은 이름값부터 해야 한다. 4월이 되면 요금을 300원이나 더 받겠다고 한다.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처음 개통됐을 때 기본구간 요금이 30원이었다. 카드면 1,250원, 현금이면 1,350원을 내는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50년 사이 50배 훌쩍 넘게 요금이 오르는 셈인데, 서비스는 그만큼 나아졌나 싶다.
□ 지하철을 타면 서민들의 삶이 보인다. 작년 한때 1호선엔 희한한 승객이 출몰했다. 중세 기사 같은 복장에 투구까지 쓰고 손에는 성경과 닭 인형을 든 채 열차에 앉아 수시로 꽥꽥 소리를 냈다. 삽시간에 온라인에 소문이 퍼지며 관심이 집중됐고, 그는 누리꾼 사이에서 새로운 ‘지하철 빌런’으로 등극했다. 실은 심한 발작 증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견뎌내기 위한 자구책이었단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난 대신 격려가 쏟아졌다. 지하철은 수많은 빌런들의 사연을 실어 날랐다.
□ 2022년 마지막 퇴근길 4호선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코로나 때문에, 바쁜 생활 때문에 힘드시겠지만 힘내세요. 역에서 하차하실 때 근심과 걱정 다 두고 내리시기 바랍니다.” 온기 가득한 안내방송에 위로받았다는 시민들이 소셜미디어를 달궜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밖을 보세요. 잠시나마 한강을 바라보며 쉬어가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한강철교를 지날 때 그 목소리에 이끌려 출근길 한강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봤었다. 새해 첫 출근길 지하철은 서슬이 퍼렇지만, 마지막 퇴근길엔 달라져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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