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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없는 시대에도 부국', 사우디 빈 살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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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년 후 석유가 엄청나게 많아도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석유는 땅속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 석유가 있어도 석유시대가 끝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석유 부국의 길로 인도한 아메드 자키 야마니 전 석유장관이 2000년 6월 예언한 석유의 미래다. 야마니는 석유를 쉽게 발굴하고 생산하겠지만, 석유를 대체할 기술이 발전해 석유 소비가 거의 100% 감소할 것이라고 보았다. 2030년을 불과 7년 앞둔 현재 야마니의 예언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탈화석연료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전 세계 석유매장량의 25%를 가지고 있고,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못해 중독된 사우디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2015년 부왕세자로 등극한 무함마드 빈살만은 이슬람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 수호 왕국이 석유 없이도 살아남을 길을 모색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데다 개혁 방안을 수립할 인력이 왕국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연 10억 달러 이상을 쏟아 서구 컨설턴트 회사의 머리를 빌렸다. 외부인이 더 솔직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변화가 절실했다.
2016년에 드디어 결과물이 나왔다. 유가에 갈팡질팡하는 석유중독 왕국을 석유 없는 경제 강국으로 만드는 ‘사우디비전 2030’이다. 산업 다각화가 핵심이다. 세계 최대 석유업체이자 기업인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지분 일부를 상장해 2030 종잣돈을 만드는 것을 신호탄으로, 국가주도 경제를 민간주도 시장 친화 경제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2015년 비석유 분야 재정 수입이 436억 달러(1,635억 사우디 리알·SR)였는데, 이를 2020년에는 1,600억 달러(6,000억SR), 2030년에는 2,670억 달러(1조SR)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우디 역사상 최초의 자동차 브랜드이자 전기자동차인 ‘시르(Ceer)’, 알룰라와 헤그라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 1979년 문 닫은 영화관의 재건 등 전례 없는 변화가 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것은 북서부 홍해 연안 타북지역에 세울 신도시 ‘네옴(Neom)’이다. 그리스어로 새로움을 뜻하는 네오(Neo)와 아랍어로 미래를 뜻하는 무스타끄발(Mustaqbal)의 영문 첫 자 M을 따서 이름을 만든 도시다. 높이 500m, 폭 200m, 길이 170㎞로 900만 명이 거주하고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 볼 수 있도록 자동화된” 자급자족형 미래도시 '더라인', 전 세계 물동량 15%를 차지하는 홍해에 떠 있는 친환경 첨단산업단지 '옥사곤', 2030년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릴 친환경 관광단지 '트로제나'가 네옴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다.
민간 주도의 시장친화적 경제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필수다. 특히 왕국을 이끌어 갈 미래의 주역이자 국민의 67%를 차지하는 35세 이하 젊은 인구가 활발하게 움직여야만 석유 없는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다. 무함마드는 사우디비전 2030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우리의 30년을 망칠 수 없다”며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짓눌러 온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금 당장”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보수적 분위기에 질식했던 여성에게 더 넓은 활동 공간을 열어주었다. 15~34세 노동 가용인구 중 절반(49%)을 차지하는 여성을 외면하고 국가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몸을 가려야만 했던 여성들이 히잡에서 벗어났고, 스스로 차를 몰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콘서트장이나 운동 경기장에서 남녀가 합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여성 아이돌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통적인 사우디 왕정은 국왕이 왕실 사람들과 협의하고 결정하기에 국가적 사업을 실행하는 속도가 느리지만, 무함마드는 사뭇 다르다.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신속하다. 실로 강력한 추진력이다. 평소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 전통을 깨고 혁신을 이룬 기업가를 좋아하던 무함마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부유한 자신이 그들처럼 혁신의 꿈을 꾼다면 사우디가 어떻게 바뀔까라는 생각을 했다는데, 무함마드가 꿈꾸던 변화와 혁신이 현재 왕국을 석유중독에서 깨우는 해독제로 작동하는 중이다.
개혁을 향한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빠르고, 네옴은 인류 문명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혁명적인 건설 프로젝트다. 빈 살만은 이스라엘의 경제, 군, 정보 자산을 높이 평가한다. 아버지 세대와 달리 팔레스타인 난민을 보며 도덕적 부채감을 지니지 않은 세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네옴을 이스라엘과 가까운 홍해변에 세우는 것은 이스라엘과 향후 협력을 기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 행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무함마드의 계획을 들은 오바마와 트럼프 행정부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장 완공 시기도 7년 후인 2030년보다는 2045~2050년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기존 건설 비용 5,000억 달러의 2배는 초과할 것인데, 재원을 어찌할지가 큰 문제다. 외부 투자를 기대하지만, 불확실한 전망의 사업에 어떤 기업이 과감하게 뛰어들지 의문이다. 또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건설 현장에 자국민을 고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숙련된 기술을 지니지 못한 자국민 고용은 불가능하기에 결국 외국 노동자가 투입되어 건설에 따른 경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더라인은 완공해도 예상 거주민 900만 명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의문도 든다. 리야드에 건설한 고층빌딩 60개의 사무실은 여전히 세입자를 찾지 못해 공실이고, 거주민 200만 명을 목표로 했던 홍해변 킹압둘라 경제도시(King Abdullah Economic City)의 인구는 10년이 지난 현재도 1만 명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업 성패가 불확실하기에 장기투자는 삼가고 단기 건설 계약 수주에 집중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우려스러운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새로운 사우디로 가는 길은 험하다. 그러나 방향은 옳다. 더군다나 네옴프로젝트의 성패는 무함마드가 물려받을 왕권의 존망과 밀접한 관계다. 실패한다면 후폭풍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정정 변동을 몰고 올 것이다. 따라서 왕국의 미래와 함께 왕정의 사활을 걸고 네옴을 성공시키려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사실 석유중독을 치유하기에는 시간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사우디아람코 대표 나세르가 유전 투자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석유로 가동하는 발전소를 성급하게 해체하려는 세계적 움직임을 멈추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나설 것을 주문한 것도 이런 긴박감을 반영한다.
미국의 부유한 중산층 도시처럼 세련된 아람코 시설에 가면 1938년 사막의 왕국을 석유부국으로 이끈 담맘 제7호 유정 자리에 '번영의 유정'이라는 기념탑이 방문객을 반긴다.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 석유중독에서 왕국을 깨우려는 빈 살만의 노력이 성공하면 네옴에 '번영의 도시'라는 기념물이 설지도 모를 일이다. 빈 살만의 꿈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중동-이슬람 전문가다.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이슬람학 석사, 이란 테헤란대에서 이슬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 전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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