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시간의 깊이를 아는 일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날씨가 부쩍 추워지니 자동차 타이어의 공기압이 떨어진 것 같아서 바람을 넣으려 정비소에 갔다. 그런데 타이어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정비사가 "이거 교체하신 지 오래됐죠? 상태가 안 좋아서 갈아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금방 바람을 넣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할 생각을 하던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어, 타이어 교체한 지 몇 달 안됐는데요?" 정비사가 피식 웃으며 답한다. "에이, 타이어 생산일자가 4년이 다 되어 가는데요? 잘 생각해보세요." 그 말대로 잘 생각해보니 그제야 이 타이어를 갈던 때의 풍경이 떠올랐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던 코로나 이전 시절, 2019년 가을이었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비유할 때 '엊그제 같은데'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수사적인 '비유'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실제로 이토록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엉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곰곰이 따져보니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우리를 둘러싼 사건들은 매 순간 겹겹이 쌓여 지층처럼 우리를 밀어 올리는데 우리는 언제나 그 맨꼭대기인 '현재'의 시간만을 밟고 서 있을 뿐이다. 내가 딛고 선 발밑에 깔려 있는 '시간의 깊이'를 파악하는 것은 3차원적인 감각이 필요한 일인데 나이가 들수록 그 높이와 거리는 계속 늘어나 시간을 이해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결과가 아주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면 모두 '엊그제'로 퉁쳐버리는 '납작해져 버린 시간'이 아닐까?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구나 싶어 갑자기 두려워졌다. 내가 과거의 나와 얼마나 멀리, 얼마나 높이 떨어져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거리와 높이에 걸맞은 인식과 책임감을 갖는 것도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흔히 말하는 '나잇값'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그렇게 실수를 거듭해온 것 같다. 아이의 어릴 적만 생각하고 그렇게 어린아이로만 대하다 보니 이제 대학생이 된 아이가 완전한 독립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고 쓸데없는 간섭과 걱정으로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좀 더 시야를 넓히자면 국가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의 폐허, 1960~1970년대의 가난과 힘겨운 삶에 고통받던 시절의 기억이 기성세대에는 여전히 생생하지만 그마저도 이미 두 세대는 지나간 과거의 얘기다. 이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의 거대한 흐름으로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당연히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치에 걸맞게 짊어져야 할 책임과 노력이 있을 것이고,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세계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키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국의 이익과 생존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2022년이 가고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시간의 지층이 또 한 겹 쌓였다. 2023년이라니, 어렸을 땐 SF소설에서나 보던 숫자인데 그 미래를 내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아득해진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시간의 깊이'를 매 순간 되새기려고 노력하자는 다짐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건 어떨까.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