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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에 가려진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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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9일 메시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개막식부터 기대되는 월드컵 이슈는 많았다. 메시와 호날두 중 과연 누가 라스트 댄스를 출 것인지부터 BTS 멤버 정국의 공연까지. 월드컵이 시작된 후에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9%의 확률로 16강에 진출하며 드라마를 써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밤새 열렸던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서 한 달을 보냈다.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을 재밌게 즐겼다.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 월드컵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월드컵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 관련 기사들이 넘쳐났다. 애국심이 줄어든 걸까? 현실이 속 시끄러워서일까? 관련 뉴스에 심드렁하게 반응하고 있던 가운데 보인 하나의 기사. '피의 월드컵' 석유 자본으로 치러진다는 화려한 월드컵 이면에는 6,751명의 이주 노동자의 죽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카타르에 월드컵 경기장과 숙소, 그리고 도로 등이 갑자기 생길 리 없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다.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에서 온 이들이 매일 40~50도 땡볕에서 10시간씩 일했다. 매달 32만 원을 받으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하던 이들은 결국 죽었다. 사인은 자연사였다.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 꿈이자, 집안의 자랑이 될 수 있는 월드컵이 누군가에겐 죽음이자, 한 집안의 슬픔이 됐다.
그즈음 SNS에서 고 박완서 작가의 글을 보게 됐다. 아들을 잃고 그해 치러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손끝 하나 살짝 베어도 통증에 사람 마음이 날카로워지는데, 자식을 한순간에 잃은 부모의 고통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내 세상은 멈추고 무너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세상이 돌아가고,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걸 바라보는 그 마음은 어떨까? 그 글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던 건 10월의 끝자락,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들의 죽음이 불과 한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참사였다. 서울 길거리에서 일어난 명백한 인재이자 참사. 책임지는 이도, 진상규명도,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한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축구를 보며 즐기는 일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목소리 내는 게 아니라, 고작 이기고 지는 축구 게임 하나에 열중하고 있는 게 미안해서.
구구절절 쓰고 생각하며 마음먹었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월드컵을 즐겼다. 한 사람의 의지가 이렇게 쉽게 툭 끊어진다. 내게는 먼 카타르에서, 가까운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되돌릴 힘도, 진상을 규명할 힘도, 다시는 반복되게 하지 않을 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지면에 번지르르하게 글만 쓰는 일은 창피하다. 누군가 행동하지 않고 가식 떤다며 손가락질해도 할 말 없다. 그런데도 쓴다. 타인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계속 기억하기 위해서. 4년 후에는 또 월드컵이 열린다. 새로운 월드컵 스타가 탄생할 것이고, 또 새로운 드라마가 쓰이겠지. 나 또한 심드렁하다가도 이내 응원하면서 즐기고 있겠지. 하지만 동시에 FIFA와 개최국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쓸 것이다. 그즈음 축제를 함께 즐기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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