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시민은 모두 사회적 약자다

입력
2022.12.30 00:00
27면
이봉주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영화금지법 제정,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안전운임제 사수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이봉주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영화금지법 제정,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안전운임제 사수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연일 이어지는 강추위와 눈 소식은 뉴스로만 접할 뿐, 뒤늦게 코로나에 걸려 격리기간을 보내면서 칩거했다. 격리 기간 동안 건강을 회복하고 안온한 내 삶을 받쳐주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감탄하고 감사했다. 이렇게 춥고, 이렇게 눈이 많이 와도, 병원과 약국은 착착 내게 맞는 처방과 치료를 제공해 주었고, 택배기사는 새벽부터 밤까지 필요한 것들을 날라다 주었다. 그 시스템은 정말 대단했고,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의료인력, 화물노동자, 택배노동자, 제설차량 기사와 청소인력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수고에 새삼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물류와 시스템을 움직이는 주요 동력인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이 최근 많은 주목을 끌었다. 파업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하기 힘든 선택이다. 파업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목소리를 내도 도저히 안 될 때 쓰는 최후의 방법이다. 안전과 물류라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시스템과 관련된 분야라면 더더욱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들이 최후의 수단이라는 파업을 통해 알리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안전과 시스템을 책임진 사람들은 정작 안전하게 일하고 제대로 보상받고 있는가? 그들이 그 오랜 시간 협상과 투쟁 끝에 파업까지 가는 동안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였나?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파업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과 과정을 거쳤는지, 그들이 파업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부당함이 무엇인지는 사라지고, 세상은 온통 그들이 파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정부는 그들과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그들을 우리 사회의 안전과 시스템을 위협하는 불법 세력으로 낙인찍고 무릎을 꿇렸다. 화물노동자들이 요구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품목 확대'는 과로와 과속 없이 안전한 노동을 하고 싶다는 절규였고, 결국 안전한 도로를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대우조선 51일간의 파업은 하청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싸움이었고, 비정규직 노동자 1,100만 명 시대,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노동3권을 제한당하고 있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권익과 관련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죽지 않고 이동하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고 결국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닥칠 교통약자를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약자이다. 시민과 노동자는 다르지 않다. 이 땅의 일하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이며, 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고, 일하는 시민들 중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사람들은 단체행동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시위를 해서라도 알리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알릴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이다. 우리의 헌법은 사용자에 비해서 근본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처해 있는 노동자를 위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낙인으로 힘없는 노동자들을 강자로 둔갑시켜 혐오의 칼날을 겨누는 일은 멈춰져야 한다.

우리의 안온한 삶을 받쳐주는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하는 과정에서, 약자들은 낮은 비용과 위험한 환경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자. 공감하면 지지를 보내고, 공감이 안 되면 적어도 그들을 향한 혐오나 방해를 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길을 터주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어두운 시대를 함께 걸어가는 우리, 노동자이자 시민의 몫이다.


강민정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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