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반미, 보수=친미’ 이분법 깨졌다

입력
2023.01.02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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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지층 절반 "한미동맹 강화해야"
"美 탈피해 자주외교 해야"는 20% 불과
국민 전체는 63.8%가 한미동맹 강화 선호
국력 신장에… "美와 대등한 외교" 주문

편집자주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한미동맹이 시작됐다. 올해 동맹 70년을 맞아 한국일보는 신년기획으로 국민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와 인터넷 웹조사, 심층면접인 포커스그룹인터뷰(FGI)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진보=반미, 보수=친미’라는 오랜 이분법과 진영 간 대립 구도가 무너진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절반, 국민 전체로는 10명 중 6명 이상이 '한미동맹 강화' 필요성을 인정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여전하지만 미국에 대한 인식만큼은 압도적인 친미 성향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 한미동맹 70년을 맞아 실시한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신년여론조사에서 ‘향후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민주당 지지층 50.6%가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미국 영향력에서 탈피해 자주·독자외교를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6%에 그쳤다. '중립'은 28.3%로 집계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3년 10월 1일 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면서 맺은 한미동맹은 올해로 벌써 70년이 됐다. 장기간의 분단체제를 겪는 동안 미국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기여한 점이 많지만 때로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우리의 이익과 배치되는 정책 결정을 내린 사례도 없지 않다. 이로 인해 '미국은 공산주의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준 고마운 나라'가 분명하지만, 한편에선 '미국이 절대선은 아니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지도 꽤 됐다.

지금의 환경은 또 다르다. MZ세대의 대북·통일 인식에 변화가 시작됐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조와 미중의 대립 속에서 한미동맹의 가치는 재평가 받는 중이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한국 정치지형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정의당 지지층의 경우 동맹 강화에 대한 선호가 52.4%로 민주당 지지층보다 오히려 높았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동맹 강화(85.4%) 견해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어 중립(10.8%), 독자외교 강화(3.3%) 순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진보로 분류되는 민주당 계열 정당 지지층의 동맹에 대한 인식 변화가 두드러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동아시아연구원 조사에서 열린우리당 지지자 44%가 '자주외교'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0%로 뚝 떨어졌다. 이와 달리 '한미동맹 강화' 응답은 2005년 26%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51%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국민 전체에 대한 조사에서는 63.8%가 한미동맹 강화를 선호했다. 독자외교를 선호하는 응답은 11.4%에 불과했다. 중립은 23.9%였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전 세대에 걸쳐 한미동맹을 전폭 지지했다. 60세 이상이 73.8%로 가장 높았고 30대(66.0%), 20대(64.2%), 50대(55.9%), 40대(53.8%) 순이었다.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을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중시하는 공감대가 확산한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우리 국력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대등한 외교'를 주문하는 응답도 70.0%에 달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동맹 미국에 대한 과거의 맹목적 신뢰보다는 점차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면서 이익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한미동맹 70년,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여론조사와 함께 심층면접인 포커스그룹인터뷰(FGI)를 병행했다. 수치상으로는 모든 세대가 미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자 경험에 따라 편차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5그룹으로 나눠 진행한 FGI 분석 결과, 2030세대는 패권국 미국의 군사·경제력과 문화적 매력을 적극 수용하며 친미 성향을 드러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다만 과거 70년 동맹 역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달랐다. "예전에 왜 반미시위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미국을 옹호하는가 하면, "한미관계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라고 사안에 따라 냉철하게 선을 긋는 양측으로 갈렸다.

민주화의 주역인 4050세대는 미국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복잡했다. "미국에 한국이 예속적인 관계"라고 질타하는 그룹은 여전히 반미 입장을 견지한 반면, 미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집단은 "동맹도 필요에 따라 하는 만큼 미국과 상생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비교해 60대 이상 그룹은 "믿을 만한 동맹은 미국밖에 없다"고 두둔하면서도 "서로 주고받는 게 분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FGI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중국'이었다. 미중 패권경쟁과 중국 위협론이 가속화하면서 한미동맹을 '안전판'으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미동맹의 본질은 군사동맹이다. 주한미군의 주둔이 이런 성격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의 가장 큰 위협인 북한 핵무기 문제가 해결됐을 때는 주한미군의 성격도 달라질까. '비핵화가 진전되면 주한미군을 축소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가 40.1%로 가장 많았지만 ‘같은 규모로 유지돼야 한다’(39.0%)는 응답과 큰 차이가 없었다. 주한미군의 가치가 대북억지에만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 조사에선 전화 여론조사로 포착하기 어려운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인터넷 웹조사도 실시했다. 웹조사에서 한반도 주변국에 대한 호감도를 물었더니(0~100도·높을수록 긍정적) 미국은 59.3도로 일본(34.8) 북한(29.0) 중국(27.1)을 크게 앞섰다.

다만 미국을 제외하면 세대별 호감도 순위가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2030세대는 일본>북한>러시아>중국, 4050세대는 일본>중국>북한>러시아, 60대 이상은 일본>중국>러시아>북한 순으로 꼽았다. 일제 강점기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 세대에 걸쳐 일본에 대한 평가가 후했고 2030세대는 중국, 4050세대는 러시아, 60대 이상은 북한에 대한 반감이 강했다.

우리 국민이 가장 큰 위협으로 생각하는 국가는 북한(66%) 중국(57%) 러시아(47%) 순으로 집계됐다. 일본은 32.4%에 그쳤고, 미국은 22.3%로 가장 낮았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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