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친하다고 생각해서 자주 어깨동무를 하고 옷매무새를 고쳐주기도 했는데, 하급자가 퇴사한 후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될 수 있다. 회식 때 술자리에서 편하게 어울리다가 옆에 앉은 나이 어린 직원의 허벅지 위에 손을 몇 번 올렸는데 얼마 후 징계위원회가 열려서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경찰에 고소당해 억울하다며 무죄를 다투고 싶다는 의뢰인에게 "시대가 바뀌었다. 무죄를 다투다가 더 큰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단호하게 조언했다. 경찰 수사기록에 의뢰인의 평소 성행에 대한 조사내용이 있는지 확인해봤더니 다른 하급자들의 진술이 있었고, 그 외에도 구체적인 증거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합의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조사 전날 의뢰인에게 "억울하다는 생각은 하지도 말라. 잘못한 것이 맞다.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혹시라도 조사를 받으면서 피해자 탓을 할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고, 약식기소로 마무리되었다.
대법원은 2년 전 성범죄의 구성요건이 되는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성적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이 표출된 경우만을 보호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은 성적 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느끼는 다양한 피해감정을 소외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을 느낄 것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피해 감정의 다양한 층위와 구체적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처지와 관점을 고려하여 성적 수치심이 유발되었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도록 했다(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19도16258 판결).
직장 내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마우스를 잡은 손 위에 본인 손을 올려놓는다거나, 장난친다고 하면서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거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거나, 회식 자리에서 허리나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등의 행위에 대해 상급자는 '친하고 편한 사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주장하지만, 하급자에게는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우울증 약을 복용하게 되는 모욕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나이 어린 신입직원 입장에서는 회사 생활을 잘하고 싶은 마음, 상급자와 좋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상급자의 행위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본인이 상급자라면 '하급자가 거절하지 않는 것'을 승낙의 의사로 받아들이는 것에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반면, 본인이 하급자라면 거절하지 않는 것이 자칫 상급자에게 오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주변의 조언을 받아 불쾌감을 적절히 표시하면 좋겠다. 불쾌감을 전혀 표시하지 않다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곧바로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을 때 상급자가 느끼는 배신감도 진심일 때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건 발생 후 상급자가 바로 사과를 했다면 하급자가 고소까지는 안 했을 사건도 있다. 회식 술자리에서 일어난 사건은 술에 취해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지만, 만약 피해자가 사과를 요청했고, 피해자가 본인을 무고할 만한 특별한 동기가 없으며, 본인이 했을 가능성 있는 행위라고 생각된다면, '증거가 있느냐'고 되묻기보다는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렇지 않고 직장 내에서의 우월한 지위와 기득권을 믿고 피해자를 유별난 사람으로 몰아간다면, 당장은 통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더 큰 처벌로 돌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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