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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전 포인트·전국 첫 멤버십... 혁신 거듭했더니 전통시장 회원 확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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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경북 포항 해도동 포항고속터미널 뒷골목에 촘촘하게 들어선 단독주택과 빌라를 비집고 들어가면 큰동해시장이 나온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동해안을 대표하는 포항 죽도시장이 있고, 15분 거리에는 대형마트도 있다. 다양한 전략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온라인 시장의 공세까지 감안하면, 큰동해시장의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될 법도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였다.
큰동해시장은 전국의 전통시장 중 최초로 회원제(멤버십)를 도입해 벌써 가입 고객만 4,000명을 넘겼다. 2년 전 개발한 모바일 배송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도 1,000명을 돌파했다. 2007년 상인 8명으로 시작해 이제는 130여 개 점포가 똘똘 뭉친 상인회는 멤버십 도입과 배송서비스 앱 등 큰동해시장 도약을 이끄는 중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강력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큰동해시장이 존재감을 발휘하는 가장 큰 이유는 2019년 1월 전국 전통시장 중 최초로 도입한 멤버십 영향이 크다. 멤버십 제도는 시장 내 몇몇 점포에서 단골을 확보하려고 만들었던 쿠폰에서 시작됐다. 상점마다 달랐던 쿠폰을 하나로 통일해 시장 전체 이용자 수 확대를 꾀한 것이다. 회원가입 후 제공된 멤버십 카드를 큰동해시장 내 상점에서 보여주면 5,000원마다 100원의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철의 도시 포항답게 상인회가 특별 제작한 엽전으로 포인트가 제공되며, 엽전은 시장 내 물건을 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회원들에게만 할인 판매를 하는 행사도 때때로 연다. 김병석 큰동해시장상인회장은 “5,000원에 100원을 포인트로 주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몇천 원짜리 물건을 파는 시장 상인들에겐 적잖은 부담”이라며 “가입을 망설이던 상인들도 고객들의 뜨거운 반응과 다른 상점들의 매출 증가가 보이자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멤버십제 도입 이후, 상인들은 고객 눈높이에서 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장을 보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게마다 튀어나온 판매대를 조금씩 양보해 일직선으로 과감히 밀어 넣은 게 대표적 사례다. 날마다 가격이 바뀌는 농축수산물 상점에선 오이 낱개 같은 작은 품목까지 가격표를 달아 손님들이 물건값을 알아보기 편하게 했다.
큰동해시장이 위치한 해도동은 포항의 구도심이다. 1980년대 지상 2층 상가주택 형태로 만들어진 ‘동해시장’이 주변 상권과 자연스럽게 합쳐지면서 조성됐다. 포항 도심을 지나 동해로 흘러나가는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포항철강산업단지도 마주한다. 제철소와 공단 근로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칼국수와 김밥, 만두 같은 분식류나 떡, 족발 등을 파는 상점이 많다.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구도심 인구가 감소했지만, 큰동해시장 내 ‘맛집’들은 꿋꿋이 살아남아 시장을 대표하는 가게로 재탄생했다.
입구에 위치한 ‘해도떡방아’를 비롯해, 건물과 건물 사이 마당 한가운데 자리한 ‘미아분식’, 아귀찜을 파는 ‘마산기사식당’은 포항뿐 아니라 전국적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달 27일 찾은 미아분식 앞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3시까지도 칼국수와 수제비를 찾는 손님들 발길이 잇따랐다. 쫄깃한 영양찰떡으로 소문난 해도떡방아 역시 시장 마스코트인 ‘해랑이’ 모양으로 치즈와 산딸기를 넣어 만든 찰떡을 맛보려는 고객들로 북적였다.
큰동해시장 단골이라는 해도동 주민 박혜정(50)씨는 “포항부추가 들어간 냉채족발과 후라이드 족발은 시장에 올 때마다 꼭 구입한다”며 “겨울 특산물인 대게와 과메기도 저렴하고 온라인 배송 서비스가 잘 돼있어 타지에 사는 지인들에게 큰동해시장 가게들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큰동해시장은 최근 모바일 앱을 통한 판매와 배송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포항지역 전통시장 중 최초 시도다. ‘달려라 큰동해’라는 이름의 앱을 내려받아 회원가입을 하면 직접 시장에 가지 않고도 휴대폰으로 어디서나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하루 두 차례 포항 도심권 전역에 직접 배송한다. 1차로 오전 11시까지 주문하면 한 시간 뒤 배달을 시작하고, 2차로 오후 2시까지 주문을 마감하고 오후 3시부터 배송해준다. 기본 배송비가 3,000원이지만, 2만 원 이상 주문하면 무료다. 모바일 앱을 통한 주문은 하루 평균 150여 건으로, 주문량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전문 배달기사를 채용했지만, 물량이 많을 때는 상인들도 힘을 보탠다.
온라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매장 환경 개선도 소홀함이 없다. ‘몇천 원짜리 물건 하나도 속여 팔지 않는다’는 상인들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시장 곳곳에 진심 저울을 설치해 놓았다. 장을 보러 온 고객들이 좀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시장 한쪽에는 복합문화공간인 ‘큰동해 사랑방’을 마련해 보드게임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시장 홍보를 위해 해마다 ‘동아리 경연 대회’와 ‘팔씨름 대회’ 같은 고객 감사 축제도 개최한다.
이런 노력은 대외적인 결실로 이어졌다. 2020년 12월 정부의 특성화시장육성사업(문화관광형) 시장 중 전통시장 활성화에 높은 성과를 낸 점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인석 큰동해시장 육성사업단장은 “다른 전통시장 상인들보다 단합이 잘 되고 새로운 시도에 호흡도 잘 맞아 상권이 크게 위축되지 않고 있다"며 “'큰동해를 한 번 방문한 고객이라면 단골로 가입하는 인기만점 시장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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