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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5호 관저' 떨게 한 미 수송기의 놀라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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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지난 20일 오후, 국방부가 갑작스럽게 밝힌 미군 스텔스 전투기(F-22)와 전략폭격기(B-52H)의 한반도 전개 소식에 뉴스 홈페이지와 포털에선 ‘F-22’라는 전투기 명칭이 대거 관심을 끌었다. F-22는 우리 공군도 보유하고 있는 최신형 스텔스 전투기 F-35A보다 구형 기종이지만, 전 세계에서 오직 미군만 갖고 있고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30년 가까이 세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전투기다. 모의교전에서 ‘144대 0’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자랑하는 이 전투기가 4년 만에 한반도 하늘에, 그것도 핵폭탄 투발이 가능한 전략폭격기 B-52H와 함께 등장했으니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국방부와 공군이 미 공군 F-22 전투기와 B-52H 전략폭격기가 우리 공군의 F-35A F-15K 전투기와 제주도 서남방 한국방공식별구역 일대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종이 각각 몇 대씩 훈련에 참가했는지, 어떤 내용의 훈련을 실시했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과연 군 당국이 밝혔듯이 이번 훈련이 제주 서남방 상공, 즉 동중국해 일대에서 대형을 갖춰 함께 비행하는 정도에서만 끝났을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 정보 당국자가 이번에 전개된 미군 자산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분석해 상부에 보고했다면,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된 12월 20일 저녁 북한 ‘15호 관저’의 사람들은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건제 단위(建制 單位)’, ‘건제 유지(建制 維持)’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건제란 일정한 편제에 따라 인원과 장비를 갖추는 것을 의미하는데 군대의 모든 행위는 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건제 단위로 이루어진다. 하다못해 보병대대 하나가 진지공사를 나가더라도 작업은 각 중대·소대별로 뭉쳐서 실시하는 것처럼, 항공작전 역시 비행단·전대·대대·편대 단위로 이루어진다. 가령, 이번 경우처럼 미국 본토에서 폭격기 태스크포스(BTF · Bomber Task Force)가 해외에 전개할 때는 반드시 같은 비행대 소속 기체들이 함께 움직인다. 그래야 일정한 지휘체계가 유지되고 원활한 작전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사진(기사 맨 위)을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들은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B-52H 전략폭격기의 수직미익의 ‘띠(Tail flash stripe)’ 색이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진 속 F-22A 전투기 3대와 함께 비행하는 ‘녹색띠’ B-52H는 기체번호 ‘61-0002’로 등록돼 있는 제2폭격비행단 예하 제20폭격비행대 소속이고, 우리 공군 F-35A 전투기들과 함께한 ‘빨간띠’ B-52H는 기체번호 ‘61-0015’로 등록된 제2폭격비행단 예하 제96폭격비행대 소속 기체다. 즉, 이번 훈련은 2개 폭격비행대에서 대표로 차출된 폭격기가 BTF 임무를 수행하는 시나리오로 수행됐다. 앵커리지·도쿄 ATC(Air Traffic Communication) 통신 기록과 항공기 ADS-B(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 기록을 조사해 보면, 이 폭격기들은 루이지애나주 박스데일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기까지 알래스카 서쪽 공역에서 두 차례, 일본 혼슈 남부 해역 상공에서 한 차례 등 세 차례나 공중급유를 받았다. 이들은 한반도 인근 공역에서는 ADS-B를 끄고, 동해상에서 쓰가루 해협 상공을 통해 태평양 방면으로 나갈 때 ADS-B를 켰는데, 이는 이들의 비행경로가 제주 남서쪽 KADIZ → 일본 시코쿠 남쪽 → 일본 혼슈 → 동해 → 쓰가루 해협으로 매우 복잡하게 이어졌음을 뜻한다.
한미연합 작계 5015에서 미군 B-52H 폭격기는 순항 미사일 발사 플랫폼으로 제주 남방 해역에서 대량의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되어 있다. 즉, 제주 남서쪽 공역에서 B-52H는 한미연합 작계에 따라 대량의 순항 미사일을 모의 발사하는 훈련을 실시했을 것이다. 훈련을 실시한 뒤 주일 미군 공중급유기에서 급유를 받고 다시 동해로 들어가 일정 시간을 비행한 뒤, 알래스카 인근에서 추가 급유를 받았다는 점은 동해 상공에서도 공대지 미사일 투발 훈련을 실시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번 B-52H 폭격기 전개는 미군 2개 폭격비행대, 최대 12대의 폭격기가 두 차례나 공대지 미사일 대량 투발 훈련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사진(기사 맨 위) 속에 등장하는 ‘의문의 수송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훈련 내내 B-52H 폭격기를 따라다닌 이 항공기는 F-22와 B-52H에 가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사실 B-52H 폭격기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2대가 식별된 이 수송기는 기체번호가 뚜렷하지 않고 ADS-B 기록도 없지만, B-52H와 마찬가지로 수직미익에 선명한 노란색 띠와 파란색 사각형 박스 덕분에 소속부대를 바로 구분할 수 있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합동기지에 주둔하는 제315공수비행단이었다. 이 부대는 미 공군 예비군사령부(AFRC) 예하로 C-17A 수송기를 운용하는데, 기본 임무는 병력과 화물 운송이지만 지난해부터 ‘래피드 드래건(Rapid Dragon)’ 시스템을 운용하는 ‘미사일 캐리어’ 임무가 추가됐다. ‘래피드 드래건’이란 표준 항공 화물용 팰릿을 연장·개조한 탄약 투발 장치를 수송기에서 투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수송기를 폭격기로 만들어주는 키트다. 이 키트에는 GPS 유도폭탄인 JDAM이나 스텔스 장거리 순항 미사일인 JASSM이 주로 탑재되는데, 이 특수 팰릿엔 길이 5.2m, 폭 2.6m로 위에 최대 9발의 JASSM 미사일이 실린다.
고고도를 비행하는 수송기가 공중에서 후방 도어를 열고 이 팰릿을 통째로 투하하면 팰릿 상단에 설치된 낙하산이 전개되고, 팰릿이 서서히 낙하하는 동안 팰릿 안에 실린 미사일이 연달아 투하돼 발사되는 시스템이다. C-17A 수송기의 화물실은 길이 약 26m, 폭 5.5m로 JASSM 9발들이 팰릿이 최대 8개까지 실린다. 이는 이 수송기 1대가 공중에서 쏠 수 있는 JASSM 미사일이 최대 72발에 달한다는 말이다. B-52H 폭격기의 JASSM 탑재 능력이 최대 20발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가공할 능력이다. 현재 미군이 운용하는 JASSM 미사일은 사거리 연장형인 JASSM-ER이 표준이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960km에 달하며, 스텔스 설계를 채택해 북한의 방공망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수송기는 비행장들을 최단 경로로 오가며 화물을 실어 나르는 항공기다. 즉, 수송기는 래피드 드래건 운용과 같은 특수 임무를 받지 않은 이상, 통상 항로를 이탈할 이유가 없다. 그런 수송기가 제주 남서쪽 공역과 동해 상공에서 B-52H 폭격기와 함께 편대를 이뤄 비행한 사실, 그리고 그 수송기들이 래피드 드래건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 소속이라는 점을 종합해 생각해 보면 미군이 이번 훈련 장면 공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이제 폭격기는 물론이고 수송기에서도 스텔스 공대지 미사일을 대량으로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역내 적성국들에 분명히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JASSM 미사일을 가득 실은 수송기가 공중에서 미사일을 투하하기 전까지 그 수송기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적들은 알 길이 없다. 다시 말하면 이제 북한과 중국 등 미국의 적성국들은 한반도와 일본 주변을 수시로 날아다니는 C-17 수송기를 B-52H나 B-1B 폭격기보다 더 위협적인 ‘미사일 캐리어’로 경계해야 하는 악몽과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찰스 브라운 미 공군참모총장은 지난 9월, ‘스위스 아미 나이프’와 같은 다기능 툴에 비교하며 앞으로 더 많은 종류의 수송기에 래피드 드래건 시스템이 실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전략폭격기 대신 한반도 상공을 수시로 오가는 C-17 수송기가 ‘상시배치 수준의 전략자산’의 역할을 수행하며 역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억제력을 제공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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